“면역에 관하여”를 읽고

이 책은 면역이라는 의학적 주제를 다룬 책이다. 그렇지만 의학책은 아니다.
면역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사실적 정보들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여러 가지 은유로 받아들인다. 질병과 백혈구, 병든 그들과 건강한 우리, 독성을 지닌 화학물질과 아름다운 자연, 적군과 아군, 필멸과 불멸 등의 은유. 그 은유에서 나와 우리, 백혈구와 자연은 언제나 건강을 대표한다. 반면, 세균, 그들, 화학물질 등은 건강하지 못한 것들로, 반드시 피해야 하는 것이 된다.

저자는 자신이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면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주변의 백인 중산층 부모들이 갖는 백신에 대한 두려움을 보고, 이 두려움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인문, 사회, 역사, 문학적인 차원에서 조사하고 숙고한다. 저자는 백신을 두려워하는 그들을 비난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외부에서 오는 것에 대해 일반적인 인간이 갖는 두려움의 근원을 찾고, 그것을 이해하고 그리고 나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책은 아킬레우스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인간이기 때문에 필멸해야하는 운명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스틱스 강에 그의 전신을 담가, 그를 불멸의 몸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손으로 잡았던 발목에는 강물이 닿지 않았고, 결국 그는 발목에 독화살을 맞고 죽음에 이른다. 이 신화에서 그리듯 우리 인간은 어쩔 수 없는 필멸성에 두려움을 갖는다.

백신이 등장한 초창기에는 외부물질이 몸 속에 주입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외부물질은 침해와 타락과 오염을 암시했다. 현대에도 우리는 백신이 질병을 예방한다는 믿음보다는 백신에 따르는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낀다. 이는 백신의 내용물이 화학성분이며, 화학성분에서 독성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독성에 대한 두려움은 이전에 오물에 대해 가졌던 두려움의 변형이다. 오물에 대한 두려움은 도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즉, 내가 도덕적으로 잘 살면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분위기이다. 이것이 변형되어 나타난 독성에 대한 두려움은 내가 나 스스로 건강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즉, 조심스럽게 살면서 타인과의 접촉을 제약한다면 질병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 하지만 질병은 남들에게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질병을 옮기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우리 몸의 침투성은 내 편과 네 편이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먹고 먹히면서 살고 있다.
1897년에 출간된 드라큘라에는 이러한 은유로 가득 차 있다. 드라큘라는 타락한 존재이고, 내 몸에 이빨을 꽂는 존재이며, 영국으로 들어온 외부인이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만 드라큘라인 것은 아니다. 수혈 받고 치료받는 과정에서 우리는 모두 드라큘라가 된다.

물론 사람들이 백신을 거부하는 데에는 자기 몸은 자기가 다스리고 싶다는 의지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각자에게 속한 것이지만, 동시에 더 많은 몸으로 이루어진 더 큰 몸 속에도 속한다. 우리 몸은 독립적이면서도 의존적이다.

책의 뒷부분에서는 <몸속 미생물 정원을 가꾸다>라는 기사를 소개한다. 몸은 이질적이고 낯선 것이라면 모조리 공격하는 전쟁기계가 아니다. 우리가 적절한 환경에서 다른 많은 미생물과 함께 균형을 이루어 살아가는 정원이다. 몸의 정원에서 우리가 제 속을 들여다볼 때 발견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타자다.

마지막 부분은 볼테르가 쓴 캉디드의 마지막 문장으로 마무리 된다.
“우리는 정원을 가꿔야 한다.”
우리의 삶이 필멸하리라는 것을 깨달을 때,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질병을 극복할 수 없음을 알 때, 즉, 우리가 더 이상 낙관적이지 않을 때, 저자는 우리가 가꾸는 정원이 세상으로 부터의 도피처가 아니라 세상을 가꾸는 장소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다. 면역은 공유된 공간이다.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개인적으로 집단 면역이 사회적으로도 또 개인적으로도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저자의 생각에 많은 부분 공감하며 읽었다.
면역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지만, 그 동안 사용된 면역에 대한 은유가 나와 질병의 관계 뿐 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동일하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 놀라움을 느꼈다. (질병을 외부로부터 오는 어떤 것으로 여길 때, 외국인에 대해서도 배타성을 갖게 되는 것 등)
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의 주장대로 우리의 태도는 우리가 사용하는 은유에 큰 영향을 받는 듯 하다.
그래서 저자가 강조하는대로, 면역을 외부의 적에 대항하는 전쟁 상황으로 볼 것이 아니라, 미생물과 함께 살아가는 정원으로 봐야하는 것이다.
그 은유가 점점 확장된다면, 국경의 의미가 점점 옅어져가는 현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평화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길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야성의 부름”을 읽고

오늘 아침엔 ‘포토 에세이쓰기’ 코치님께서 김춘수 시인의 “꽃”을 리드문으로 올려주셨어요.
예전부터 참 좋아하던 시였죠.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애송하는 시가 아닐까 싶어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이 시에 나오는 시구처럼,
우리 모두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꽃이 될 수 있는 존재인가 봅니다.
어쩌면 꽃은 비유적인 의미이고, 실제로는 말 그대로 이름을 불리운 자만이 그 사회 혹은 그 집단 혹은 친구사이 혹은 사랑하는 자들 사이의 한 성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도 되겠지요.
호칭이라는 것은 혼자 있을 때는 큰 의미가 없으니까요.

오랜만에 김춘수님의 꽃을 읊조리다 보니 며칠 전에 읽은 “야성의 부름”이 생각나네요.

문명사회의 화목한 가정 내에서 반려견으로 사랑 받으면 살아가던 개 ‘벅’이 어떻게 납치당해 썰매개가 되었는지, 썰매개로 살면서 어떻게 옛 시대의 야성을 회복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늑대들의 부름에 응답하여 인간 세상을 떠나 늑대들의 우두머리인 유령개가 되었는지를 이야기해주는 책입니다.

벅이 야성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여전히 인간 사회 내에 존재하는 개로만 머물렀을 것입니다. 비록 그가 몸 속에 야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더라도요.
하지만 벅은 야성의 집요한 부름에 응답하였고, 인간 세상에서 태어났으나 그 세상을 버리고 원래 태고 적에 자신이 속하였던 집단으로 돌아갑니다.

나는 이 책을 왜 이제야 읽은 걸까요?
이런 책은 어렸을 때 읽었어야 했는데, 반백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이걸 읽고는 나의 야성은 왜 진작 나를 부르지 않았을까. 하고 의문을 갖게 되네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야성이 부른다면 갈 수 있을까.
거기에 바로 예. 라고 말할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건강한 신체와 강인한 정신을 가진 자만이 야성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벅처럼 강하지 않았던 썰매 개들은 문명과 야생의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썰매 개 사회에서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는데, 야생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어쩌면 허약한 자들을 위해서는 문명사회가 더 인간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에 또 생각을 하다 내린 결론은, 이미 야생에서 살 수 없는 몸과 마음을 가진 나는 문명사회의 부름에 응답하는 삶을 살기로 하자. 였습니다.^^

해설을 보니 벅을 니체의 위버멘쉬(Übermensch)와 비교하기도 하던데, 저는 보통사람인, 그냥 멘쉬(Mensch)로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니체가 비판한 최후의 인간(der letzte Mensch)에서는 벗어난 존재이고 싶네요.

4월에 읽은 책들

4월에 읽은 책들을 정리해 봅니다.
4월 제가 사는 곳에서는 햇살 좋은 날이 너무 많았어요.
독서의 최대 적은 좋은 날씨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열심히 읽었습니다.
5월이 되면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점점 더 많이 줄어들 거 같아서요.^^

문학

01.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로저 젤라즈니 저, 김상훈 역, 열린책들, 2009

http://kimchoi.com/wordpress/?p=702

 

글쓰기

02.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우치다 다쓰루 저, 김경원 역, 원더박스, 2018

http://kimchoi.com/wordpress/?p=693

 

03. 글쓰기 비행학교, 김무영 저, 씽크스마트, 2014
04. 에세이 비행학교, 김무영 저, 씽크스마트, 2015

인문

05.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 이현우 저, 마음산책, 2017

http://kimchoi.com/wordpress/?p=717

 

자기계발/인간관계

06. 거절당하지 않는 힘, 이현우 저, 더난츨판사, 2018
07. 게으름도 습관이다, 최명기 저, 알키, 2017
08.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유은정 저, 21세기북스, 2016

 

과학/기술

 

09. 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 데이비드 헬펀드 저, 노태복 역, 더퀘스트, 2017
10. 우연의 설계, 마크 뷰캐넌 외 저, 마이클 브룩스 엮음, 김상훈 역, 반니, 2017

11.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이정모, 바틀비, 2018

http://kimchoi.com/wordpress/?p=708

 

12. 블록체인 무엇인가?, 다니엘 드레셔 저, 이병욱 역, 이지스퍼블리싱, 2018

http://kimchoi.com/wordpress/?p=739

 

4월에는 책을 읽고 감상문 적어 둔 것도 많고, 또 요약해 둔 것도 있어서 링크 주소 함께 올립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시작되었습니다.
겨울처럼 할 일 없어 책을 붙잡고 지내지는 못하겠지만, 삶을 즐기는 중간 중간 독서도 잊지 않고 싶습니다. 지금 생각으로는요.^^

(책 요약) 블록체인 무엇인가?

이 책은 제목처럼 블록체인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즉, 블록체인의 기술적인 개념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를 들어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실제로 사용되는 분야나 앞으로의 과제 등에 대해서는 아주 간략하게만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이 아쉬운 분들은 <블록체인혁명>등을 이어서 읽어보시길 권한다. (저도 아직 안 읽음^^)

왜 우리에게 블록체인이 필요한가?

소프트웨어의 엔진이라고 할 수 있는 시스템 아키텍처에는 분산 시스템과 중앙통제 시스템이 있다. Peer to Peer 네트워크, 즉 P2P 네트워크는 분산 시스템의 특수한 형태로 개별 컴퓨터 (노드)로 구성된 시스템은 중앙 노드의 조정 없이 모든 구성원이 서로에게 계산 자원을 제공한다. 네트워크의 각 노드는 시스템 내에서 동등한 권리와 역할을 가지며, 모두가 자원의 공급자인 동시에 소비자가 된다. P2P 시스템의 위력은 무형의 상품이나 디지털화된 상품 또는 서비스를 중개하는 역할을 주업으로 하는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산업들은 모두 P2P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사업이 바로 금융업이다.

블록체인은 바로 이러한 분산 시스템 내에서 무결성을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는 도구이고, 또한 탈중개화를 위한 도구이다. 따라서 블록체인이 가지게 되는 핵심 과제는 ‘개수도 알려지지 않고 신뢰성과 안정성도 알 수 없는’ 피어들로 구성된 순수 분산 P2P 시스템의 무결성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블록체인이라는 용어는 문맥과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로 쓰이지만 이 책에서는 소유권을 명확화 하는 데에 중점으로 두고 정의를 내린다. 즉, 블록체인이란 무결성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 순서에 따라 연결된 블록들의 정보내용을, 암호화 기법과 보안기술을 이용해 협상하는 알고리즘으로 구성된 소프트웨어 요소를 활용하는, 원장의 순수 분산 P2P 시스템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소유권은 어떻게 증명하는가? 소유자와 물건의 매핑은 원장에 기록해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원장만 가지고 있는 것은 훼손이나 위조의 위험이 있다. 블록체인-데이터-구조를 사용하면 원장의 순수 분산 P2P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블록체인 알고리즘은 개별 노드들이 하나의 일관된 소유권 상태에 집단적으로 도달하도록 해준다. 식별, 인증, 승인은 암호화 기법을 사용해 구현한다. 이는 소유권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판단이 가능하도록 해주고 법적으로 허가된 소유자만 자산의 소유권을 타인에게 이전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블록체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 부분에서는 소유권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통해 블록체인의 작동원리를 설명한다.
우선은 소유권을 투명하고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기록해야하고, 소유에 대한 증거까지 제공해야한다. 그러려면 소유권의 현 상태만 기술하지 않고 소유권이 이전된 이력까지 원장에 빠짐없이 기록 보관해야 한다. 즉, 소유권 이전이 일어날 때 마다 트랜잭션 데이터는 누가 누구에게 어떤 아이템의 소유권을 언제 이전했는지 기록한다. 블록체인은 모든 트랜잭션을 일어난 순서대로 블록체인-데이터-구조에 저장하여 전체 이력을 유지한다. 이 이력에 없는 트랜잭션은 어떠한 것이든 일어난 적이 없었던 것으로 간주된다.

블록체인에는 암호화 해시값 Hash value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이것은 말하자면 지문의 디지털 버전으로 생각하면 된다. 해시 함수는 어떤 형태의 데이터든 입력 데이터의 길이와 상관없이 고정된 길이의 숫자로 변환하는 함수이다. 이것을 사용하는 이유는 엄청난 양의 트랜잭션 데이터들 중 고유한 트랜잭션을 식별해 내고 최대한 빨리 비교하기 위한 것이다.

해시값은 데이터를 비교하고, 데이터의 변경을 감지한다. 해시값이 다르면 데이터도 다른 것이다. 변경되어서는 안 되는 방대한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체인방식과 트리방식으로 해시 참조를 사용하여 저장할 수 있다. 그 외에도 해시값은 컴퓨터들끼리 퍼즐 대결을 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블록체인에서 사용하는 기반 기술 중 하나는 암호화 기법이다. 암호화기법은 사용자를 식별하고 자산을 보호하는 근간이 된다. 블록체인에서는 비대칭 암호화기법을 사용하는 데, 사용자 계정번호는 공개암호키로 사용되고, 소유권을 이전하려는 계정의 소유자는 자신의 개인 키를 사용해 암호문을 생성하게 된다.

이번에는 블록체인-데이터-구조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본다. 블록체인-데이터-구조는 블록이라 불리는, 순서대로 정렬된 단위로 구성된 특수 데이터 구조이다. 각 블록의 헤더가 이전 블록의 헤더를 참조하면 개별 블록 헤더와 순서를 각각 유지할 수 있고, 이것이 모여서 블록체인-데이터-구조를 형성한다. 각 블록 헤더는 암호화 해시값으로 식별할 수 있고, 여기에는 이전 블록 헤더를 가리키는 해시 참조와 응용과제에 특화된 데이터를 가리키는 해시참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데이터를 변경하려면 조작된 데이터를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해시 참조에서부터 블록체인-데이터-구조의 헤드까지, 모든 해시 참조를 완전히 갱신해야 한다. 블록체인의 데이터를 변경하는 작업은 대단히 힘이 든다. 의도적으로 어렵게 설계해 놓은 프로세스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트랜잭션 데이터를 블록체인-데이터-구조에 추가하려면 다음의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새로 추가될 모든 트랜잭션 데이터를 담고 있는 새 머클 트리 생성, 이전 블록 헤더를 가리키는 해시 참조와 새로운 트랜잭션 데이터를 담고 있는 머클 트리의 루트를 포함하는 새 블록 헤더 생성, 새 블록 헤더가 가리키는 해시 참조를 생성하고 이것을 블록체인-데이터-구조의 새로운 해드로 경신.
이로써 블로체인-데이터-구조는 추가 전용 불변성 데이터 저장소가 된다.

여기에서는 순수 분산 P2P 시스템에서 트랜잭션 정보 공유를 허용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블록체인에서 메시지는 소문 형식으로 전달된다. 새로운 정보를 받은 노드는 자신이 통신하는 피어에게 전달한다. 개별적인 몇몇 메시지는 손실될 수 있어도 궁극적으로 모든 노드가 뉴스를 수신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메시지는 디지털 지문이나 암호화 해시값으로 식별 가능하기 때문에 중복 메시지는 쉽게 식별해 무시할 수 있다. 트랜잭션 데이터와 블록 헤더에는 타임 스탬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노드들은 객관적인 시간 기준에 따라 메시지를 정렬할 수 있다.

블록체인 알고리즘은 경쟁과 피어 통제를 합친 채찍과 당근을 활용하고 있다. 모든 노드가 피어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면서 유효하고 인증된 트랜잭션을 추가하고, 타인의 오류를 찾아내서 보상을 받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의 개별 노드가 유지하고 있는 트랜잭션의 이력이 서로 달라 충돌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새 블록을 네트워크에 전송하는 데 걸린 시간의 지연으로 인해, 또는 거의 동시에 새 블록을 생성한 노드들로 인해 블록체인-데이터-구조는 선인장처럼 자랄 수 있다. 여기서 의사결정은 모든 노드가 동일한 트랜잭션 이력을 선택하는 것이다. 트랜잭션 데이터 이력 선정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하나는 가장 긴 체인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무거운 체인 기준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더 많은 블록이 추가될수록 권위 체인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현상을 ‘궁극적 일관성’이라고 부른다.

블록체인은 시스템 무결성에 기여한 피어들에게 보상으로 수수료를 지급한다. 여기에서 블록체인에 의해 소유권이 관리되는 독립적인 디지털 화폐인 암호화폐가 보상의 결제수단으로 사용된다.

블록체인의 한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블록체인은 두 가지 갈등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블록체인이 소유권을 검증하는 핵심은 개방성과 투명성이다. 그러나 이는 개인정보 보호와 정면으로 대치된다. 이러한 갈등은 데이터를 읽을 권한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정하는 문제와 동일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모든 사용자와 노드에게 트랜잭션 데이터를 읽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공개 블록체인과 선택된 사용자와 노드에게만 권한을 주는 비밀 블록체인 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
두 번째 갈등상황은 보안과 속도의 문제이다. 이는 누구에게 쓸 권한을 줄 것인가를 문제와 동일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모두에게 쓰기 권한을 부여하는 무승인형 블록체인과 온-보딩 프로세스를 거쳐 신뢰성이 확인된 소수의 노드나 사용자 그룹에만 쓰기 권한을 허용하는 승인형 블록체인 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
노드별로 읽기와 쓰기 권한에 제약을 두면 블록체인의 주요측면과 상충해 블록체인의 존재이유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비밀-승인형 블록체인에서조차 블록체인은 여전히 무결성 유지에 아주 유용하다. 그러므로 블록체인이 여전히 가치를 발휘한다는 가정 하에 제약사항들을 완화할 수 있다.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블록체인

블록체인은 결국 실생활에 사용되기 위해 발명된 것이다. 블록체인은 순수 분산 데이터 저장소로서, 데이터는 불변성이고 추가전용이며 시간 스탬프가 있어 정렬되어 있고 궁극적으로 일관되어 있다는 성격을 갖는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포괄적인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다. 1. 존재증명, 2. 비존재 증명, 3. 시간 증명, 4, 순서 증명, 5. 신원 증명, 6.저작권 증명, 7. 소유권 증명
이미 주목 받고 있거나 가까운 시기에 주목을 끌 만한 블록체인 응용분야는 다음과 같다. 1. 결제, 2. 암호화폐, 3. 소액결제, 4. 디지털 자산, 5. 디지털 식별, 6. 공증 서비스, 7. 준법 감시와 감사, 8. 세금, 9. 투표, 10. 기록관리

기술적인 장점 외에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블록체인은 다음의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1. 탈중개화, 2. 자동화, 3. 표준화, 4. 프로세스 합리화, 5. 처리속도 향상, 6. 비용 절감, 7. 프로토콜 및 테크놀로지의 신뢰 이동, 8. 신뢰를 상품으로 만듦, 9. 기술 인식 향상

그 외에도 미래의 블록체인은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로는 완전한 개방성과 순수 분산 시스템의 속성에 매료된 블록체인 열성팬들이 공개-무승인 블록체인을 사용하여 정부나 상업적인 조직의 통제나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하는 대체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창조하는 데 헌신할 것이다.
두 번째는 대규모 상업적인 블록체인이 비밀-승인 블록체인을 활용할 것이다.
세 번째는 정부주도의 프로젝트로서, 수작업을 디지털화하고 기존 인프라를 대체하는 전자정부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될 수 있다.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를 읽고

오늘 소개 하고 싶은 책은 로쟈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하신 이현우 님의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입니다.
어제 밤 자기 전에 다 읽었는데, 다 읽고 내가 한 말이 “이 책 읽기 잘 했어.”였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니체의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핵심개념인 “초인”과 “영원회귀” 개념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 후에는 니체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작가들과 그 작품들을 초인과 영원회귀 개념으로 해석하고요.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예전에 읽긴 읽었습니다. 그냥 눈으로만 읽었죠.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쪼금, 아주 쪼금 알 것도 같습니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란 독일어로 Übermensch 입니다. 위버멘쉬란 ‘넘어가는 인간’이자 ‘극복하는 인간’입니다. 초인의 삶은 주인으로서의 삶입니다. 자신이 결정권을 가진 주체적인 인간을 말합니다.

그리고 “영원회귀”란 이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들은 유한하고 시간은 무한하기 때문에, 무한한 시간 속에서 유한한 물질의 조합은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은 결정론적인 세계입니다. 초인이 가진 절대적인 자유와 선택의 의지를 제약합니다. 여기에서 초인과 영원회귀 사상에 모순이 발생합니다.

초인과 영원회귀 이 두 가지가 <차라투스투라>의 중심 개념인데 모순이 생기면 안 되죠. 그래서 차라투스투라는 “내가 원한다”고 말함으로써 이 모순을 해결합니다. 자신이 원치 않는 세계가 반복된다면 자신은 예속된 것이지만, 자신이 반복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예속이 아닌 것이지요.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지나 간 과거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내가 원했어”라고 한다면, 그건 자기 운명에 대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모르파티 (amor fati), 운명에 대한 사랑인 것이지요.

아 이렇게 명확하게 니체 철학을 설명해 주시다니, 저자님께 너무 너무 감사드리고 싶네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작가와 작품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최후의 유혹>, 서머싯 모옴의 <달과 6펜스>, <인생의 베일>, <면도날>, 그리고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입니다.

이 중에서 저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해석이 가장 흥미로웠는데요, 쿤데라가 이 작품에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단 한번 뿐인 삶에 반복되는 삶인 영원회귀를 붙여 놓으면, 단 한번 뿐인 삶은 갑자기 새롭게 규정이 됩니다. 영원회귀가 너무 무겁기 때문에 일회적인 삶은 너무 가벼워집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언제 읽었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래전에 읽었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도 읽어보고 싶고요, 모옴 책은 한 권도 못 읽어 봤는데, 모옴 책들도 읽어 봐야겠구요.
읽어야 할 책 목록만 자꾸 자꾸 늘어납니다.

어째 저 개인적으로는 영원회귀 개념과는 반대로 시간이 무한한 게 아니라, 시간은 유한한데 물질적인 할 일이 무한한 느낌이죠? ㅎㅎ.
아니면 이런 상태가 무한히 반복 되는건가? 미궁이로군요.
아 역시… 이해한 줄 알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던 것이군요. 무한회귀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