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좋은 곳에 데려다 주면 좋겠다.

좋은 신발이 좋은 곳에 데려다 준다고들 하던데…

오늘 남편한테 선물을 받았다.
스니커즈 두 켤레.
하나는 검정. 하나는 하양.
(같이 가서 고르긴 했지만, 결제는 남편이. ㅎㅎ, 나도 지난 달에 선물 한 개 이미 했음^^)

비싼 신발은 아니지만, 두 켤레라 맘에 든다.
왜냐면 의상에 맞춰서 어떨 때는 흰색을 신고, 어떨 때는 검은색을 신어야 되니까.

나는 키가 작은 편이라 높은 굽을 사랑했었다.
한 때 7cm 미만은 취급을 안 할때도 있었다.
9cm 힐을 신으면 기분이 아주 좋았다.
공기도 윗 공기는 다른 것 같고, 시야가 달라 지니 세상도 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이힐에 치마를 입으면 예뻐보인다는 칭찬에 기분도 좋았고.

하지만 지금은 납작한 신발만 신는다. 그냥. 편해서.
키 작은 게 뭔 흠인가 싶어서.
발, 다리, 허리가 아프기도 하고.
그리고 자주 많이 걷고 싶어서.

그래서 오늘도 걷기 편한 스니커즈를 골랐다. 멋과 실용성을 겸비한 아이템 이라고나 할까.

웬일로 내일은 따뜻할 예정이라고 한다.
겨우 내 신었던 앵글 부츠 잠깐 벗고, 스니커즈 한번 신어봐야겠다.
내일부터 써머타임도 시작되니까. 마음은 봄 인양.

이 신발들이 진짜로 날 좋은 곳에 데려다 주면 좋겠다.

꼭 어떤 특정한 좋은 공간이라기 보다는,
좋은 사람들과 만나 얘기 나눌 수 있는 곳으로.

주변의 아름다움을 자세히 관찰 하면서 걸을 수 있는 동네 산책길로.
혹은 먼 곳에 대한 동경을 현실화 할 수 있는 여행지로.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가족에게든, 친구에게든, 낯선 이에게든.

좋은 곳으로.

하릴없이 봄을 기다리는.

어릴 때 몸에 각인된 계절 감각은 바뀌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나에게 3월은 계속 봄이다.
실상 베를린의 3월은 겨울이고, 여기 산지가 20년인데도 그렇다.

1998년 3월 베를린 테겔 공항을 통해 베를린이라는 도시에 처음 도착했다.
이 도시에 대한 첫 인상은, 공항 문을 열고 밖에 나갔을 때 느꼈던 엄청난 추위였다.
그 이후 베를린은 나에게 늘 추운 도시였다.

그럼 이제는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3월에 혹시 봄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물론 머리로는 포기했다.
하지만 마음이 그렇지가 않다.

거리의 쇼윈도에는 2월부터 이미 샤랄라 봄 옷들이 진열되어 있다.(왠지 늘 그렇다.)
길거리를 걸을 때마다 욕을 한다.
이렇게 추워죽겠는데 웬 봄 옷? 장난하나?
그래 놓고서는 20년째 같은 푸념이네. 하고 혼자 웃는다.
(8월경엔 가을 겨울 옷들 진열이 시작되는데, 그 땐 괴리감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곧 다시 추워질 거니까…^^)

어제는 함박눈이 내렸다.
정말 예쁘게. 소로록… 소로록…
내일도 눈이 온다고 한다.
잠깐 따뜻해진다는 예보도 있지만, 믿어도 될까?

날씨에 일희일비하는 내가 싫지만, 여기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만나면 날씨 얘기부터 하는 게 일상.
너무 춥지 않아? 너무 매일 비가 오는 거 아냐? 너무 해가 없는 거 아냐?
zu kalt, viel Regen, wenig Sonne…

3월의 봄을 포기하면 기분이 좀 더 나아질 수도 있을 텐데.
참 포기가 안 된다.
내 몸의 고집.

일불거 ( 내가 그들을 멀리할 수 없는 한 가지 이유)

여성의 인권이 거의 바닥이었던 조선시대.
칠거지악을 행한 부인에 대해서 유교적 가치를 들먹이며, 남편이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청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세 가지 경우에는 이혼이 허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부인이 다시 돌아갈 곳이 없는 경우, 결혼 후 살림이 핀 경우, 부모의 삼년상을 함께 치른 경우. 이 세가지 경우를 삼불거라고 했다.
물론 부인에게는 이혼 청구권 조차 없었을 것이다.

서설이 장황했다.
조선시대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일불거(삼불거가 아니라)가 있다는 걸 말하려고 어거지로 삼불거를 인용하였다.

나의 일불거, 즉 누군가를 멀리할 수 없는 한가지 조건은 바로 내가 아플 때 함께 있어 주었는가이다.

2012년 나는 아주 많이 아팠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으로 여러날 입원을 하고 한달간 집에서 쉬어야했다.
그 때 직접적으로 내 옆에서 날 돌봐 준 사람은 물론 우리 남편이다.
이 분은 당연히 내가 죽을 때까지 가까이하며 지낼 것이다.(영원히 함께~~~)

그리고 또 한 그룹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날 모르겠지만, 그들은 내가 아플 때 간접적으로 함께해 주었다.
내가 병원에서 퇴원한 후, 나 때문에 일주일 넘게 출근도 못했던 남편도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아이는 학교에 가고, 나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냈다.
그 때 내가 주로 듣던 음악이 빅뱅의 얼라이브 앨범이었다.
이 앨범은 내가 퇴원하던 날 출시되었고, 그 음악들은 가료 기간 나의 회복을 도왔다.
그 이후 나는 빅뱅의 광팬이 되었다.

2018년 멤버들이 줄줄이 입대를 하여, 당분간 빅뱅은 활동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며칠 전 “꽃 길”이라는 노래가 발표되어 마음을 약간 달래주고 있다.
멤버들이 다 제대를 하고 다시 활동하더라도 그 활동이 예전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다시 빅뱅으로 돌아온다면 나는 그들을 계속 응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일불거라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꽃 길 가사 중

“떠나려거든 보내 드리오리다
님이 가시는 길에 꽃을 뿌리오리다
그리워지면 돌아와 줘요
그때 또 다시 날 사랑해줘요
이 꽃 길 따라 잠시 쉬어가다가
그 자리 그곳에서 날 기다려요”

낙서 같은 글, 그게 바로 낙서

내가 가지고 다니는 수첩을 펼쳐보면 군데군데 낙서가 많다.
앉아서 멍하게 있다가 생각없이 선을 그리고는 한다.

 

얼마 전까지 가지고 다니던 수첩은 모눈 수첩 이어서, 낙서 하기가 수월했다.

그냥 모눈의 네모칸을 한칸 건너 하나씩 검은 색 볼펜으로 채우거나, 한 칸은 가로선 한칸은 세로선을 그리면 그럴싸한 무늬들이 나오곤 했다.

모눈이 아닌 종이에다가는 아무렇게나 동그란 애들 그려 놓고, 또 군데군데 검게 칠한다.

 

 

그런데 왜 낙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오늘 쓰게 될 글이 낙서 같은 글이 될 거 같아서, 낙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큰 의미없는 끄적임.
의식의 흐름 아니고, 무의식의 흐름.

하긴 낙서 같은 글이 바로 낙서네.

낙서인 이 글은 인터넷이라는 바다에 맹물 한 숟갈 더 붓는 꼴일까,
쓰레기 하나 던져 넣는 꼴일까.

오. 제발 쓰레기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30일간 매일 글쓰기로 한 결심을 지키려는 갸륵한 마음에서 쓰는 글이니까.

프로일라인 에밀리(Fräulein Emily)

얼마전 산책길에 예쁜 카페를 발견했다.

나에게 있어 인생의 낙이란 대단한 게 아니다.

저녁에 집에서 맥주 한 잔하면 얼싸구나 좋고,

낮에 예쁜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면 고운 향기에 좋다.

 

큰 길가에서 아주 쪼금 벗어난 주택가 골목길에 이렇게 카페가 있다.

이름도 Fräulein Emily (미스 에밀리)

에밀리는 전형적인 독일식 이름은 아니지만, 앞에 프로일라인을 붙이니 왠지 하이디나 클라라처럼 약간 올드하면서도 정겨운 독일 느낌이 난다.

 

유리 너머 보이는 주택들.

동네 산책 중 분위기 있어 보이는 카페를 새로 발견하면 아주 기분이 좋다.

내가 커피 마실 공간이 생겨서 그렇기도 하지만,  새로운 독서모임 장소를 찾았다는 기쁨이 더 크다.

주택가라 오전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용히 공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제 이 곳에서 독서 모임을 하였다.

 

주인이 베트남 사람인 모양이었다.

베트남 커피를 팔길래, 조금 더 비싸긴 하지만 그걸로 주문했다.

이렇게 커피를 내려서 먹는데, 컵안에 단맛을 내는 게 들어있어서 커피맛이 엄청 달달했다.

맛있어보이는 조각케잌들도 많았지만, 아침을 먹고 만난지라 케잌은 생략.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눈 책은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

 

책 제목은 바깥은 여름이지만, 실상 이곳의 바깥은 완전 혹독한 겨울.^^

 

낮에 모임을 하게 될 경우에는 이곳에 종종 오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카페에도 조만간 사람들이 몰릴 것 같다.

우리 동네에 내가 애정하는 다른 카페가 있었는데, 요즘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공부하기에 좀 많이 부담스러워졌다.

게다가 큰 길에 있는 스타벅스, 카라스, 발자크는 항상 사람들로 꽉 차 있어서 모임은 커녕 혼자 앉아 커피 한잔 하면서 책읽기에도 마음이 불편하다.

동네에 자꾸자꾸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자꾸자꾸 새로운 카페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