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아래를 보자

(사진은 며칠 전 산책 중 골목길에서 찍은 것임.)

 

유럽에는 돌길이 많다.
물론 보도 블럭이 깔린 길도 많긴 하지만…

그 옛날 로마시대 도로들도 돌로 포장이 되었었다는데, 아마도 그 전통이 남아서 그런가.
아니면 마차를 이용하면서 도로 포장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 구하기 쉬운 재료가 돌이라서 그랬나.
여기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암튼 유럽에는 돌길이 많다.

나는 이 돌길이 참 좋다.
그래서 산책길에도 그렇고 유럽의 다른 여행지에서도 돌길 사진을 많이 찍는다.
바닥에 대고 사진을 찍으면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긴 한다.

유럽 돌길이 다 거기서 거기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도로 포장 맡은 이의 미적감각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

사람들은 아래만 보지말고 하늘도 보고 걸으라고 하지만,
자기가 발 디디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먼저 알고 나서, 하늘도 보고 주변도 봐야하지 않을까?

몇 년전에 우리집 바로 앞 도로를 다 파헤지고 도로 포장을 다시 한 적이 있었다.
길의 일부에는 보도 블록을 깔고, 다른 쪽에는 돌들을 깔았다.
그 돌들은 크기가 비슷하긴 했지만 일정하지 않았다.
잘린 면도 울퉁불퉁했다.
그걸 사람이 하나하나 땅에 놓고 면이 넓은 망치로 일일이 박았다.

그 때 그 돌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많은 돌들은 다 어디서 가져온 걸까?
돌의 모양이 이렇게 불규칙한 걸보면, 큰 돌을 가져다 공장 같은데서 기계로 일정하게 자르는 건 아닌 듯 했다.
이렇게 혼자 의문을 가지고 있다가 남편한테도 궁금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남편도 궁금했는지, 인터넷을 뒤져 나한테 아주 옛날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오래전 영상이긴 한데, 도로포장용 돌을 만드는 영상이었다.
말하자면, 우리가 어릴때 불렀던 동요랑 같은 메카니즘이었다.

“바위돌 깨뜨려 돌덩이,
돌덩이 깨뜨려 돌맹이,
돌맹이 깨뜨려 자갈돌,
자갈돌 깨뜨려 모래알….
랄라랄라라 랄라라 랄라랄라라 랄라라”

물론 모래알까지 가지는 않았다.

먼저 큰 돌산(Steinberg)에 가서 큰 덩이로 돌을 잘라온다.
큰 덩이 돌에 쐐기를 박아 두드려 쪼갠다.
이런식으로 일일이 쪼개고 또 쪼개서 포장용 돌을 만드는 것이었다.
비슷한 크기와 비슷한 색깔로 구분하여 놓기 때문에 (이것도 사람이 직접 분류),
길을 깔 때 특정 무늬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진짜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영상을 본 이후 아래로 아래로 더 많이 눈길이 간다.
물론 아래만 보고 살 수는 없다.
그래도 가끔은 아래를, 우리가 밟고 있는 길을 보자.
그리고나서 허리를 펴서 하늘도 보고.

아들의 사랑니

-사진은 아들이 직접 그린 자기 카톡 프로필 사진
-위 사진과 울 아들의 개인사가 언급된 이 내용은 아들의 허락 하에 올리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아들이 사랑니를 뽑았다.
사랑니는 어른이 되어야 나는 줄 알았는데, 이제 중 3인 아들이 사랑니가 났다.

사랑니는 독일어로는 Weisheitzahn 이라고 한다.
영어의 wisdom tooth 와 같은 의미이다.
Wiseheit는 현명함. 지혜 이런 뜻이고 Zahn은 치아란 뜻이다.
결국 어느정도 세상 돌아가는 거 알고 사리분별 할 줄 아는 나이가 되어야 나오는 치아란 뜻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 겨우 중학생, 아직은 어른보다는 철부지에 더 가까운 나이에 사랑니라니.ㅠㅠ

치아교정을 이제 막 끝냈는데, 의사 선생님 왈, 치아교정을 하면서 찍은 엑스레이 사진에 의하면 사랑니가 어금니쪽을 향해서 나고 있기 때문에 얼른 발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평상시 다니는 치과에 문의하라고 했다.
평상시 다니던 어린이 치과에서는 더 큰 일반치과로 가라고 했다.

그래서 어제 드디어 더 큰 일반치과에 가서, 아직 잇몸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 사랑니를 뽑느라 잇몸을 절개하고 사랑니를 드릴로 조각내어 발치를 하는 수술을 하였다.
병원에서 부르는 명칭이 진짜로 수술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아들의 발치과정을 보기 힘들 수도 있으니 진료실 말고 대기실에서 기다리겠느냐고 물었다.
그냥 진료실에 있겠다고 했다.
아들은 조금 걱정된다는 말은 했지만, 그냥 무덤덤하게 발치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마취가 풀려갈 무렵엔 통증이 너무 심한지 눈물을 뚝뚝뚝 흘렸다.
주루룩이 아니라 그야말로 뚝뚝뚝….

아이는 조금씩 조금씩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내 경험 상으로 아이는 애처럼 굴다가도 어떤 힘든 계기가 있을때마다 갑자기 성장했다.
그러다 다시 애처럼 굴고, 하지만 다시 힘든 일이 생기면 그 이후에 더 성장해 있곤 했다.
이번에 사랑니를 뽑고 통증에 눈물 흘리던 아이는 아마도 이전의 성장폭 보다도 훨씬 더 많이 자라게 될 것 같다.

요즘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자식 커가니까 너무 좋다고.
이제 아들한테 엄마 손은 많이 안가는데, 되려 아들 손이 엄마를 많이 돕는다고.
하지만 결국 이 아이도 곧 우리를 떠나겠지.

우리도 부모님을 떠나 이 머나 먼 곳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아들의 사랑니 덕에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난 당신의 이름을 알아!

지금부터 적는 이야기는 실제 벌어진 일이 아니다.
내가 잠을 자는 동안 내 머리 속에서 생생하게 일어났던 일이다.
말하자면 모든 게 뒤죽박죽인 개꿈이지만 꿈이 너무 선명하여 메모를 해 두었다가 여기에 적는다.
글쓰기 책에 나오는 조언들 중 꿈일기를 써보라는 조언이 있어서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과감하게 올리니 양해해 주시길.

사건의 발생 장소는 폴란드.(도시는 모르겠다.)
나는 해변가에 방갈로를 대여하여 묵고 있었다.
이 해변은 실제 해변이 아니라 인공모래와 인공바닷물로 만든 인공해변이었다.
겨울이었지만 실내온도도 그렇고 실내조명도 어쩜 그렇게 딱 맞게 조절하여 여름밤 해변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여름밤엔 맥주 한잔이 제격이지. 하고 생각하며 방갈로 끝에 있는 야외주점에 갔다.
무슨 맥주를 마실까.
주문하는 곳 뒤에 크게 붙어있는 메뉴를 훑어보았다.
어… 폴란드 맥주. 그거. 이름이 뭐더라. 나 그게 마시고 싶은데…
갑자기 왁자지껄 한국말이 들린다.
열댓명 정도의 한국의 중년여성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 분들 덕에 나는 메뉴도 제대로 못 읽고, 주문하는 곳 옆의 구석으로 밀려났다.
어차피 맥주 이름이 기억이 안나니, 그 분들이 먼저 주문해도 상관없었다.
단체관광 손님들인가 보다 생각했는데, 가이드도 안보이고, 모두들 폴란드 말로 능숙하게 주문을 하는 것이었다.
와… 대단하다. 외국어 저리 잘하시다니 부럽다. 하며 그 분들이 주문을 하고 음료를 받아가는 모습을 넋 놓고 보았다.
그 때 갑자기 맥주 이름이 생각났다. (꿈에서는 생각났었는데, 지금은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남. 여기서는 그냥 유명 폴란드 맥주인 지비에츠라고 하자.)
그래서 얼른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열 댓명 주문인데 셀프 서비스라 시간이 좀 걸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지비에츠 맥주 두 잔! 하고 주문을 했다. ( 왜 두 잔을 시켰는지는 모르겠다. 암튼 두 잔. 그런데 나는 어느 나라말로 주문을 했을까. 그것도 모르겠다.)
그리고 뒷 손님들이 주문할 수 있도록 약간 옆으로 비켜 서서 내 음료가 나오길 기다렸다.
뒤에 손님은 중국인 남자 관광객 두 명이었는데, 그들도 나처럼 폴란드 맥주 두 잔을 시켰다.
음료가 나왔다. 맥주 두 잔! 그런데 맥주를 가지고 온 직원이 이 맥주를 내가 아닌 중국인들에게 주는 것이 아닌가.
제가 먼저 주문을 했는데요. 하고 따지니, 맥주를 전해준 직원이 말하길 주문받은 직원이 내 주문을 잊어버린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아까 내 주문을 받았던 직원이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며 웃었다. 아니 비웃었다.
그 직원은 미안하다며 새로 가져오겠다며 사라졌다가 잠시 후 다시 나타났다.
다행히 양 손에 맥주가 한잔씩 들려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하고 내 앞에 잔을 내려 놓았다. 분명히 내 앞에다가 잔을 내려 놓았는데, 맥주가 사라졌다. 깜쪽같이. 눈도 깜짝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그 사라진 맥주가 주문대 바로 앞 테이블에 놓여있는게 아닌가?
그 자리에 앉아있던 손님들은 마치 그 맥주가 원래부터 자기들이 주문해서 받아온 맥주인냥 건배를 하고 신나게 마시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가슴이 쿵쿵 거리고 얼굴에 열이 올라 벌겋게 되었다.
그 직원은 또 나를 보고 웃었다. 아니 비웃었다.
당신 이름은 뭐죠? 그리고 매니저 좀 불러주십시오. 라고 했다.
직원은 놀라는 척 연기를 하면서, 들고 있던 쟁반으로 유니폼에 붙어있던 이름표를 가렸다.
매니저님은 지금 안 계신데요.
당신 이름이 뭐냐고 물었는데요?
대답은 하지 않고 또 실실 웃기만했다.
좋아요. 덤불 머리를 하신 당신. 인상착의를 아니까 이 곳 인터넷 게시판에 불만 접수하겠습니다. 라고 가급적 화를 가라앉히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그 직원의 덤불 같은 머리가 대머리로 바뀌고, 없던 수염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게 다 뭐야.
너무 억울해서 말도 안 나오고 눈물까지 저절로 흘러나왔다.
나는 뒤돌아서 그 가게를 나왔다.
용서하지 않겠어. 하며 분노로 팔을 휘적대며 걷는데, 글쎄 그 인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 뒤를 따라오는 것 아닌가.
아무래도 혼자는 위험해. 빨리 숙소에 가서 구원병을 데려와야겠어.
나는 점점 더 빨리 걷다가 뛰다가 했다.
그런데 갑자기 대머리에 덥수룩한 수염으로 변신한 그 인간이 내 앞에 슥~ 나타나는 게 아닌가.
너무 놀라 엄마야~ 를 외치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그 때 갑자기 그 작자의 이름이 떠올랐다.
아마도 주문하면서 슬쩍 본 이름을 내 무의식이 기억하고 있다가 놀란 순간 의식으로 밀어 낸 모양이었다.
이거 봐! 난 당신의 이름을 알아! 나는 소리쳤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나를 보며 비웃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에 침이 튀길 정도로, 성대가 다 갈라질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당신의 이름은 파울 비랙이야. ( 이 뜬금없는 이름은 뭘까? 이 이름의 의미를 전혀 모르겠다. 어쨌건 꿈에서 내가 외친 이름이고 잊어버릴까봐 눈뜨자마자 바로 적어두었다.)
웃고 있던 상대의 얼굴이 점차 무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영화에서 어떤 악한 존재가 주인공의 일격에 사라져 버리듯이 그렇게 흔적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주인공인 나는 그 길로 꿈에서 깨어났다.

모든 일이 꿈이라서 다행이었다.

실제로 그런 일을 당했다면 얼마나 억울할 뻔 했겠는가.

그렇지만, 꿈이긴 했지만, 끝까지 폴란드 맥주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건 좀 아쉽긴 했다.

혹시나 폴란드 맥주를 보게 된다면 꼭 마셔보리라.

선물가게 지나야 출구. 나는 그게 좋다.

오랜만에 시내에 나갔다.
마치 동면하둣, 사람들도 최소한으로만 만나고, 동네도 잘 벗어나지 않은 겨우살이었지만 오늘은 하루 휴무인 남편을 졸라서 시내에 갔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햇볕이 좋았다.

목적지는 서베를린의 중심지에 있는 쇼핑몰인 Bikini Berlin.
쇼핑을 하려 했던 것은 아니고, 쇼핑몰에서 특별한 전시회가 열린다고 해서 모처럼 외출을 감행한 것이었다.

 


전시회의 제목은 “ The Art Of Banksy“로, 영국의 그래피티 작가인 뱅크시의 전시회였다.
아직도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미스테리한 인물이지만, 2010년도에는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도 변조한 상태로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라는 영화도 찍었다.

이번 전시회 역시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가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지만, 그 누가 선물 가게를 비난할 수 있으랴.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치 못하듯, 나도 선물가게를 지나치지 못하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난 선물가게를 꼼꼼히 돌아보고 화집이랑 엽서를 구입했다.
뱅크시의 그래피티가 그려진 티셔츠랑 가방도 너무 너무 갖고 싶었지만, 경제활동하지 않는자가 그리 욕심을 부리면 안된다는 자각에 그런 품목들은 사지 않았다.

(* 뱅크시 전시에 관한 내용은 별도로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기다려 주세요~)

 

전시회장을 아쉬운 마음으로 나와서는 쇼핑몰을 둘러보았다.
매장 안까지 둘러보기에는 이미 전시회에서 체력을 소진하였으므로, 매장 밖에서만 구경하였다. 오늘은 그냥 윈도우 쇼퍼.

이 쇼핑몰의 아주 대단한 장점은 유럽최대 동물원인 Zoo Berlin 과 바로 맞대고 있어, 쇼핑몰 테라스에서 동물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추운 날씨라 나와 있는 애들이 있나 걱정했는데, 몇몇 애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원숭이의 한 종류인 듯 한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동물 식물의 종류에 관해서는 문외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 몰라서 무례할 정도이다.
돌아다니는 애들을 보니 정말로 강렬하게 새빨간 레드 힙이다! 원숭이 엉덩이는 진짜로 빨갛구나. 그래 그랬어…

날씨가 너무 추워, 볼이 아렸다. 머리 빗는 브러쉬로 얼굴을 두드려 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쉽지만 얼른 시내 관광자 모드를 끝내고 집으로 향했다.

 

집근처에 다 와서는 오늘 외출의 마무리로 카페에서 차 한 잔.

함께 동행했던 남편은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무척 보람찬 하루였다.
너무 추워 에너지를 많이 써서 그런지, 아니면 그간 집에서만 지내서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몹시 피곤하긴 했지만…^^

뇌 속이기

(사진은 남편이 나를 위해 지난 연말에 선물 해 준 Adventskalender (대림절 달력) 맥주임. 기념으로 사진찍어 둠. 맥주 종류도 참 많다. 독일에서 사는 큰 낙 중 하나.)

 

인생에 낙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를 들자면 하루 일과를 다 마치고 밤에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맥주 한잔 마시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나도 나이도 점점 들고 건강도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2018년 새해 벽두에 신년 계획을 세우면서 이를 고려한 항목을 하나 적었다.

“집에서 혼술을 하는 경우 맥주 한 캔 이상은 마시지 않는다.”
(물론 손님이 집에 오셨다거나, 내가 밖에서 친구들과 만남을 갖는 경우는 제외)

일단 며칠은 큰 무리가 없었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누구나 사흘은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후 드라마를 보는 중간에 맥주 한 캔을 다 마시면 바로 냉장고로 달려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아니 이런이런. 사람이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고, 사람이 계획을 세웠으면 한 달은 넘겨야하지 않겠는가.

엄청난 내적 갈등 끝에 묘책을 하나 내었다.
뇌를 속이자.
뇌가 드라마에 빠져 정신이 없을테니 그 사이 뇌를 속여보자.
그래서 맥주 한 캔이 더 마시고 싶을 때는 내가 늘 사용하는 0.5 liter 맥주 잔에 물을 가득 담아 놓고 마셨다.
이미 한잔을 마셨으니, 같은 잔에 물을 마시면 내 혀는 알아도 뇌는 속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말하자면 물로 맥주를 만드는 눈속임 아니 뇌속임 마술.

그 결과는 ?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혼술 시 맥주를 한 캔 이상 마시지 않고, 심지어 그 외에 물 0.5 liter도 추가로 마시니, 안 좋은 건 줄이고 좋은 건 늘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본 셈이다.

그런데 뇌가 정말 나의 묘책에 속은 걸까? 아님 속은 척을 한 걸까?
자기계발적 인간인지라 내가 나 스스로를 이겨보겠다는 무의식적 욕구가 내 의지력을 우회적으로 발동시킨 걸까?

자세한 심리적 기제가 뭔지는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오늘도 나는 재미나게 드라마도 보고 맥주도 한 캔하고 물도 많이 마시고.
인생의 여러가지 낙 중 한가지를 누렸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