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단상

나라는 인간을 나조차도 종잡을 수가 없다.

그제 산책할 때 일이다.
커튼 사이로 보이는 햇볕이 좋았다.
해가 순식간에 길어졌구나. 동지날 지난지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인데.
한 시간쯤 후면 해가 저물기 시작할 것 같았다.
씻고 단장하고 할 거 없이 바로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날이 좋아 한참 신이 나서 골목길 위주로 걷다가, 이제 큰 길로 나가 볼까하고 쇼핑몰과 큰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를 걸었다.

한 커피숍 앞을 지나갈 때, 우유를 첨가한 커피 한잔이 너무 마시고 싶었다.
아주 가끔 어쩌다 가끔 산책길에 커피 한 잔 하는 거 삶의 큰 낙 중 하나니까.
하지만 안 돼. 세수도 안하고 그냥 나왔는데, 남의 사업장에 그런 상태로 가는 건 예의가 아니지. 오늘은 참자.

그리고 계속 큰 길을 따라 걸었다.
의류백화점 앞을 지나는데 쇼윈도에 세일이란 빨간 글씨가 보였다. 전에 봐두었던 겨자색 스웨터도 세일을 하려나. 나도 모르게 매장안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았다. 옷에 붙은 태그엔 여전히 예전 가격 그대로. 흠…
1층을 돌고, 지하도 돌고, 2층까지 다 돌아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는 남의 사업장에 세수도 안하고 들어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더니, 불과 몇 십분 후에는 남의 사업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서 온 매장을 다 훑고 다니지 않았던가.
며칠전과 며칠후도 아니고, 몇분전과 몇분후가 이렇게 다르다니!
게다가 옷 쇼핑보다는 커피숍에서 책읽는 걸 더 좋아하는 게 내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이랬다. 나는 종잡을 수 없는 모순적인 사람인 걸로 하자.
나는 어떤 사람일까 고민해도 오늘 생각 다르고 내일 생각 또 다르고
또 이번 경우처럼 몇분전 다르고 몇분후 다르니까.
모순성을 내 정체성으로 해야 할거 같다.
암튼 그 날 산책길에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내일이나 모레 쯤에는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꽤 일관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보고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는 마시길. 나도 답을 못하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