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블로그 글쓰기 30일째

숭례문학당의 매일 블로그 글쓰기 1기가 오늘로서 마무리된다.
아마도 내일 이후에는 이전처럼 주당 3회 정도만 글을 업데이트하게 될 것 같다.
블로그에 매일 글을 쓴다는 것.
매일 글을 쓰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글의 질이 더 큰 문제였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
중요한 것은 매일 글을 쓰는 데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이제 믿어야 할 것은 양질전환의 법칙 뿐이다.
매일 써서 글의 양이 많아지다 보면 언젠가 남들이 읽을 만한 좋은 글이 나올 것이라는.^^

이번 한 달 동안 다른 분들과 매일 함께 쓰는 과정이 나에게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함께 쓰기의 좋은 점은 외부자극이 있다는 점이었다.
전에도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스타일이긴 했다.
하지만 자기가 자기를 때리면 별로 아프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자기가 자기에게 간지럼을 태워도 간지럽지 않듯이.

하지만 이 과정은 아침마다 코치님이 글쓰기에 관련된 글을 보내 주시고, 틈틈이 얼른 글쓰라고 격려도 해 주시고, 알찬 블로그 팁도 주셨기 때문에, 블로그 안정화에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함께 쓰시는 분들과 카톡과 블로그 상호방문 등, 매일 매일 교류함으로써 긍정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
글쓰기에도 도움이 되었지만 삶에 더 큰 자극이 되었다.
외국에서 섬처럼 살고 있다가 다른 분들의 글을 매일 읽다보니, 다른 분들의 일상을 통해 나와 다른 점, 혹은 비슷한 점을 찾으면서 삶 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이는 매우 귀중한 경험으로, 아주 아주 시간이 많이 지나도 잊혀 지지 않을 것 같다.

또 소소하게 좋았던 점들을 꼽아보면,
심심하다는 단어가 한 달 동안 생각나지 않았다는 것,
아주 작은 생각의 꼬투리라도 잡아서 글을 쓰게 된 것,
사진 같은 거 여행가서도 잘 안 찍었는데 요즘은 뭐라도 찍고 있는 것 (훌륭한 나만의 사진 아카이브가 될 것 같다)
퇴고를 한다는 점 (한번 쓰면 다시 읽는 일이 잘 없었는데, 블로그는 공개글이라 꼼꼼이 읽지는 못해도 한두 번은 다시 읽어보게 된다. 그래도 오타랑 비문은 넘쳐나지만)

일단 매일 블로그 글쓰기는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하지만 나의 매일 글쓰기는 계속 될 예정이다.
4월에는 같은 코치님이 진행하시는 매일 감성에세이 과정에 등록했다. ㅎㅎ
문학적인 글쓰기가 한번 해보고 싶어서.
그런 글은 내 평생 써 본적이 없어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다.
붓을 들면 일필휘지로 천리마를 탄 듯 종이 위를 달리면 좋겠지만, 그렇게 될 리는 없고…
천리마 말꼬리 털이라도 만져봤으면 좋겠다.

모네의 건초더미와 칸딘스키의 추상미술

어제 책을 보다가 아주 흥미로운 부분을 읽게 되었다.
박혜성의 <어쨌든 미술은 재밌다>라는 책에 보면, 법률가였던 칸딘스키가 모네의 “건초더미”그림 한 점을 보고 화가로 전향한 이야기가 나온다.
인상파인 모네와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칸딘스키의 접합점은 어디일까.
참 생뚱맞은 조합이다.

작년에 포츠담에 있는 박물관 Museum Barberni 에서 인상주의 전시회를 한 적이 있었다.
정기적으로 하다가 지금은 비정기적으로 하고 있는 박물관 수업이 있는데, 그 수업에서 한 단체 관람이었다.

그 때 선생님이 강조하여 말씀하시길,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을 이렇게 많이 모아놓은 전시회는 없었다. 한 번에 모네의 건초더미를 이렇게 많이 볼 수 있는 기회는 아마도 다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가 의미가 있다. 고 하셨다.
아마도 이 박물관이 새로 개관을 하면서, 박물관 측에서 작품을 여기저기서 가져오는 데 힘을 좀 쓴 모양이었다. 다른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대여한 것도 많았지만 개인소장품들도 많았다.

아무튼… 모네라고 하면 수련 연작이나 알지, 건초더미 연작은 처음 들었고, 또 처음 보았다.
박물관 한 곳에 마네의 건초더미들이 연달아 걸려있었다. 전체 몇 작품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어쨌건 다 건초더미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에 맞춰.

(그날 사진을 하나도 안 찍었는지 사진이 사진첩에 하나도 없다.ㅜㅜ
그래서 브러셔에 있는 사진을 다시 찍어보았다. 더 많은 이미지가 궁금하신 분은 google에서 모네 건초더미를 검색하시면 된다.)

이 작품에서 칸딘스키는 어떠한 예술적 부름을 받았던 것일까?
사실 칸딘스키는 이 그림이 건초더미를 그린 것인 줄 몰랐었다고 한다.
건초더미라고 생각을 안 하고 보면, 내가 봐도 그냥 어떤 덩어리가 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저 의미 없는 모양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는 일종의 에피파니(갑작스런 깨달음이랄까)를 느낀 것 같다.
나중에서야 그림의 제목을 보고 분노와 충격을 동시에 느꼈다고.

“이 때 칸딘스티의 마음에 추상미술의 씨앗이 심어집니다. ‘그림은 대상이 보이지 않아도 감동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위의 책 인용)

지금이야 “대상이 보이지 않아도 감동할 수 있다”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추상미술이란 것 자체가 없었던 그 시기에는 매우 놀라운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결국, 누가 시작했건 추상미술은 시작되었겠지만, 칸딘스키에 의해 추상미술이 시작된 것은 모네 그림의 오독에서 시작되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나는 이런 점이 너무 좋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확실하고 명확하다면, 새로운 것이 나타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잘못 든 길이 새로운 길을 만드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20-40년대 인형 유행현상에 대해

20년간 독일에 살면서도 독일어가 늘지 않아 힘들 때가 많죠.
그래서 아주 가끔씩 (몇 년만에 한 번씩) 독일어 수업을 듣곤 해요.
2015년에도 저보다 스무살 쯤 어린 학생들과 함께 매일반 수업을 몇 달간 들었었습니다.
그 학원은 유독 학생들에게 프레젠테이션을 많이 시켰어요.
그 때 제가 3번 정도 발표를 한 것 같은데, 그 중 하나를 오늘 소개 할께요.
주제는 1920에서 40년대에 유럽과 북미에 불었던 인형유행 현상에 관한 것입니다.
독일어로 적어 둔거를 오늘 다시 한국말로 바꿨더니 뭔가 번역체 느낌.

 

이하 발표 내용.

(사진은 제가 소장하고 있는 인형입니다. 더 많은 이미지는 google 에서 Boudoir dolls 로 검색하시면 됩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스타일의 인형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 인형들에게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런 종류의 인형은 20년대에서 40년대 사이에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생산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유럽과 북아메리카는 인형유행 현상에 빠져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당시에는 유명 여배우들이 자신의 인형들을 들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죠.
그리고 물론 모던 걸들도 이러한 인형들을 소장해야 했습니다.
이 시기 이전에 사람들은 인형이란 단지 아이들의 장난감, 특히 어린 소녀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이 당시 인형들은 성인 여성들이 사용하였는데, 자신들의 소파나, 침대, 방들을 꾸미거나 마스코트로 가지고 다니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연유로 이 인형들이 부드와 인형, 소파 인형, 혹은 침대인형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인형전문가인 Susanna Oroyan은 이러한 인형유행 현상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 경제적인 전통들이 깨어졌고, 이 때문에 당시 젊은 이들이 전쟁 이전의 시기로 되돌아가고 싶어 했고, 계속 어린이로 남아있고 싶어 했던 것이라고요.

인형들의 크기는 보통 60cm에서 100cm정도였고, 다양한 재료들로 만들어졌습니다.
머리는 보통 Composition(합성물?)이나 펠트 혹은 다른 재료들로 제작되었습니다.
몸통은 대부분 헝겊이나 펠트로 만들어졌고, 속은 면으로 채워 넣었습니다.

이 인형들은 스타일이 아주 다양했습니다.
여러 가지 것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는데, 예를 들면, 18세기 프랑스의 로코코 스타일이나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조지 왕 시대를 따른 스타일, 또는 이탈리아 연극에 나오는 극중 인물들을 따라서 만들기도 했습니다.
최신 유행 옷을 입고 있는 인형들도 당연히 있었고요.

그 외에도 바지 입은 인형들이나 담배를 물고 있는 인형들도 많았습니다.
당시 여성인권 문제가 대두되어서 여성들도 바지를 입거나 공공 장소에서 흡연하는 것이 허용되었기 때입니다.
물론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공공연히 바지를 입지도 못하고 담배를 피우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방 안에 바지를 입고 담배를 피우는 인형을 두고 있으면서, 많은 여성들이 대리만족을 느꼈을 겁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인형유행 현상에 대해 열광한 것은 아닙니다.
철학자 Anatole France는 인형들 때문에 출산율이 낮아진다고 주장했다고 하네요.
여성들이 인형들을 가지고 노는 동안 자신들의 의무를 잊어버린다고 하면서요.

불행하게도 이 인형유행 현상은 길게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30년대 경제공황이 시작되면서 많은 인형공장들이 문을 닫게 됩니다.
40년대에 들어서는 인형의 인기가 사그라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한동안 이 인형들은 살아 남았습니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6031

어제 집에서 혼자 영화를 봤다.
영화를 딱히 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글은 써야겠고 글 소재는 없고 해서 영화를 봤다.
주객전도도 이런 주객전도가 없다.
하지만 한밤중에 혼자서 영화 보니까 너무 좋더라.

어제 밤 급하게 고른 영화는 짐 자무쉬 감독의 2013년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였다. (이 후 글에 스포일러 많습니다.)
틸다 스윈튼과 톰 히들스턴이라는 매력적인 배우들이 나오는 게 선택의 주요요인 이었다.
중년의 사람들이 이렇게 매혹적이어도 되는지.
중년의 사람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는 게 가능한 지.

문학과 음악을 사랑하는 예술가 커플인 뱀파이어의 이야기로, 어쩌면 내용은 없고, 탐미적인 이미지만 남는 영화라는 평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예술가이면서도 예술에 대한 고뇌도 없고, 인간과 삶에 대한 싫증도 결국 간간히 드러나는 고질병의 하나로만 치부되며,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열되지만 그저 이름만 나열될 뿐, 그들 삶에 끼친 영향은 전무하다.
영화에서 삶의 교훈을 기대하는 건,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스타일에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21세기 뱀파이어들은 더 이상 사람 목을 물지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다.)
그러니까 피도 우아하게 와인 마시듯 음미하며 마신다. 우아하게.
뱀파이어 부부는 잠도 우아하게 잔다. 마치 두 몸이 행위예술가가 설정해 놓은 듯이 포개져서 우아하게.
늘 끼고 다니는 장갑과 선글래스는 패션 아이템이 된다.(같이 클럽에 간 인간이 자기도 선글래스를 따라서 낀다. 왜?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게 멋져 보이니까. 그가 좀 더 오래 살았었다면 장갑도 꼈을 것이다.)

영화는 아름다움만을 위해 진행되는 듯 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반전을 준다.
21세기 스타일로 우아하고 아름답게 살던 뱀파이어 부부에게 엄청난 위기가 다가온다.
바로 순수한 피의 공급책이자, 그들의 인생 선배인 뱀파이어가 세상을 뜬 것이다.
이 위기는 너무나 직접적인 문제다. 바로 생존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피를 공급 받을 수 없다는 것. 결국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
그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삶의 종말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하지만 그들 앞에 나타난 젊고 아름다운 연인들. 사랑을 나누느라 주변에는 관심도 없다.
죽음을 기다리던 뱀파이어 부부의 마지막 결심.
21세기지만 15세기에나 하던 짓. 즉, 인간 사냥을 다시 하자고.
그리고 그 연인들에게 다가가며 영화는 끝난다.

예술과 문학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그들이지만, 생존의 위기에서는 동물적인 본능이 앞설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사람도 동물이기에 어쩔 수 없다. 뱀파이어가 있다면 당연히 그들도 그럴 것이다.
삶에 대한 의지. 생존 욕구.

영화의 마지막을 보니 제목이 이해가 간다.
제목에 나오는 ‘오직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 즉 살고자 하는 사람들만 살아남는다는 뜻이란 것을.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 후한 점수를 줄 것이다.
생존 문제가 없을 때는 우아하게 살고, 생존 문제가 걸렸을 땐 동물처럼이라도 어떻게든 살자.
나도 그럴 것이다. 어떻게든 살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난 주말에 베를린 근교 루피너 호수(Ruppiner See)에 다녀왔다.
그냥 놀러간 것은 아니고 다른 일로 갔는데, 거기에 그 호수가 있었다.
오랜만에 넓은 물을 보니, 겨우 내 춥고 답답했던 마음 속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데 반해, 중부유럽에 속한 독일은 북쪽만 바다에 면해있다.
바다 보러 가는 일은 연중 혹은 격년 중 큰 행사로 치러진다.

하지만, 군데 군데 큰 호수가 많기 때문에 아쉬운 대로 바다 대신 호수를 만나러 가곤 한다.
일정 기간 동안 호수나 바다를 보지 못하면 금단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
전생에 물고기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바다… 호수…를 그리워하고 있다 .

바다나 호수에 갈 때마다 <논어>에서 공자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되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

(子曰 知者樂水하고 仁者樂山이니 知者動하고 仁者靜하며 知者樂하고 仁者壽니라.
자왈 지자요수하고 인자요산이니 지자동하고 인자정하며 지자락하고 인자수니라.)

지자요수. 인자요산.

아마도 나는 어진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산에 올라가기에는 체력이 너무 허접하다.
그럼 지혜로운 사람인가? 현재 나는 지혜로운 사람도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인자 보다는 지자가 더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물을 이렇게도 그리워하니.

흐르는 물을 세상의 지혜로 표현하신 공자님의 표현력이 대단하시다.
지혜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변화와 분리될 수 없고,
새 시대에 맞는 사고의 유연함이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산을 한결같은 사람이 갖는 어짊의 품성으로 비유하신 것도 그렇고.

그나저나 공자님 말씀을 따르면,
장수하려면 어진 사람이 되어야하고, 즐겁게 살려면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하는데…,
나는 오래 오래 살고도 싶고, 재밌게 살고도 싶은데…
내가 어짊과 지혜로움을 다 갖춘 사람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