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요약) 사람, 장소, 환대

업데이트가 너무 없어서, 예전에  <사람, 장소, 환대> 요약해 둔 것을 좀 풀어놓을게요.

관심있으시면, 나중에 꼭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진짜로 강추하고 싶은 책이고요, 다른 책에서도 인용이 많이 되는 책입니다.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저, 문학과지성사, 2015

1장 사람의 개념
사람 대 인간
인간이란 자연적 사실의 문제이다. 그러나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 성원권을 가져야 한다. 즉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태아
태아는 법적으로나 관습적으로나 사회 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태아의 시신은 특수폐기물)

노예
노예는 얼굴, 이름이 없으며,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얼굴이 없다는 것은 체면이나 명예가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사회성원간의 상호작용 의례에서 제외되므로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그가 태생적으로 소외된 존재임을 알린다. 이는 그를 인정해 줄 친족집단이 없기 때문.
그리고 노예는 법률행위의 주체가 될 수 없으므로 사람이 아니라 물건으로 규정된다.
페터슨은 노예를 권력이 없고, 친족이 없고, 명예가 없는 자,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군인
현대전에서 병사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다. 전시에 적군을 죽이는 것이 ‘인권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살인이 아니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게임 속에서, 적대하는 두 국가는 각각 인구의 일정부분을 차출하여 그들로부터 사람의 지위를 빼앗고, 총알이나 포탄과 같은 소모품으로 만들어 버린다. 군인은 어떤 의미에서 죽어있는 존재로 강등되어있는 자이다.

사형수
로크 : 다른 이의 생명, 자유, 재산을 침해한 자는 자연법을 위반했기에 자연적 공동체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잃는다. 즉, 전 인류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셈이기 때문에 호랑이나 사자처럼 살해되어 마땅하다. 이에 대한 의미는 두 가지로, 우선 사형수는 죽기 전에 이미 사람자격을 박탈당하고 물건의 지위로 떨어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범죄자의 처형이 전쟁터에서 적을 죽이는 행위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2장 성원권과 인정투쟁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인정된다는 것, 즉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아렌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는 ‘현상공간’으로, 타인이 나에게 ‘현상한다’는 말은 그가 나의 ‘상호작용의 지평 안에 있다’는 말과 같다. 사회의 경계는 이 나날의 인정투쟁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그어진다.

주인과 노예
주인들은 복수의 존재이다(우리). 주인들끼리는 상호인정 상태이고, 노예는 인정투쟁 장의 외부를 상징한다.
패터슨 :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예존재가 중요하다. 타이모크라시(명예에 집착하는 문화)에서는 노예제 사회 내의 자유인들이 명예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데, 이는 몰락하고 명예를 읽은 인간은 노예와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인정투쟁의 장 외부를 구성하는 노예의 존재는 이 투쟁을 생사를 건 싸움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남부인들의 자유에 대한 사랑. 평등의 감정 -그들이 노예가 아니라는 사실에 기초를 둔 정체성)
결론적으로 인정투쟁이 지향하는 타자는 적이 아니라 우리이다. 즉, 인정투쟁은 성원권 투쟁이다.

외국인의 문제
외국인이라는 꼬리표는 스티그마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외국인이 그 자체로 낙인찍힌 범주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이상적인 외국인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한에서이다. (돈 많고 교양 있고 “원더풀”이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환대 혹은 사회적 성원권은 조건적이다.
외국인에 대한 환대의 철회는 그들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에 의해 정당화된다.
그러나 그 장소는 종종 허구적인 것으로 밝혀진다(예. 재일조선인들의 ‘조선’, 남아프리카 공화국 원주민들의 ‘홈랜드’인 반투스탄).

오염의 메타포
왜 어떤 범주의 사람들- 흑인, 재일조선인, 불가촉천민 등등-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럽다고 여겨지는가?
더글러스 :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원권의 문제는 분류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며, 인식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학의 문제이다. 여성의 사회적 성원권을 부정하면서도, 음양론에 의거하여 여성과 남성에 대해 대칭적이고 상호보완적인 위치를 부여하는 성리학적 세계관이 좋은 예이다. 가부장제도 하에서 여성은 사회 안에 어떤 적법한 자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여성은 단지 스스로를 비가시화 한다는 조건으로, 물리적인 의미에서 사회 안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받고 있을 뿐이다. 여성이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사회는 여성이 잘못된 장소에 있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여성이 존재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깨끗한 여성이란 보이지 않는 여성이다.
깨끗한 여성과 더러운 여성의 차이는 노예와 아웃카스트의 차이와 비슷하다. 아웃카스트와 달리 노예는 더럽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예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3장 사람의 연기/수행
사람이 수행적 이라는 것은 사람다움이 우리 안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사람다움은 우리에게 있다고 여겨지며,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는 체하는 어떤 것, 서로가 서로의 연극을 믿어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어떤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본질을 갖지 않는 현상이다.

가면과 얼굴
고프먼은 사회적 공연에 배우로도 관객으로도 참여하지 않으며 같은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거기 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사람에 대해 비인격 이라는 단어를 쓴다. 비인격의 고전적인 유형은 하인이다.
비인격의 다른 유형은 택시운전사이다. 그러나 이 경우 비가시화가 인격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가 직무에서 벗어나는 순간 가시성을 회복하기 때문이다. 고프먼은 비인격 이라는 범주를 사회적. 법적 성원권의 상실과 연관시키지 않고 순수하게 연극적인 맥락에서 사용한다. 우리는 인격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현상하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이란 곧 연기자를 말하는데, 우리는 사회라는 무대 위에 올라가서 실제로 연기를 하면서 우리의 사람자격을 확인받게 된다.
사람person이라는 단어의 첫 번째 의미는 가면mask 이다.
가면이 우리 인격의 일부이며 우리는 가면을 씀으로써, 즉 어떤 역할 또는 성격을 연기함으로써 비로소 사람이 된다.
얼굴과 가면은 다른데, 가면 뒤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얼굴은 신성한 것 또는 명예이다. 신성함은 의례를 통해 확립되고 재생산된다. 어떤 사람의 연기가 맘에 안 들고, 그가 만들어 내는 것이 가면에 불과함을 알면서도 그 가면을 굳이 벗기려하지 않을 때, 그가 가면을 완성하도록 도와주고, 실수로 가면이 벗겨져도 못 본체할 때, 그의 가면 뒤에 있는 신성한 것에 경의를 표할 때 그 사람은 얼굴을 갖게 된다.

명예와 존엄
버거 : 우리는 명예의 세계를 떠나 존엄의 세계로 옮겨왔다. 명예는 그것을 가질 자격이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지만, 존엄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명예의 세계: 위계(신분), 옷을 입은 인간, 공적 공간(전쟁터), 규범, 위치감각
존엄의 세계: 평등, 벌거벗은 인간, 사적 공간(침대), 자유, 좌표 상실
그러나 존엄 역시 문화적인 관념이며, 사회적인 의례를 통해 재생산된다. 버거의 개념으로는 모욕은 (존엄이 아닌) 명예에 대한 공격으로만 이해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의 모욕은 여전히 중요한 공적의제이다. 민권운동에서 게이-레즈비언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체성 투쟁의 핵심에는 모욕에 대한 저항이 있다. 모욕은 존엄을 공격할 뿐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무너뜨린다. (배타적 민족주의 운동, 파시즘은 배제하고자 하는 집단을 공공연히 모욕하는데서 출발)
모욕을 더 포괄적으로 정의하려면 그것을 존엄과 연관시키면서도, 감정처럼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언어처럼 객관적으로 기술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상호작용 의례에 대한 고프먼의 논의는 이러한 접근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4장 모욕의 의미
의례의 교환은 단절의 계기들-즉 모욕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현대사회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동등한 인격을 부여하는데, 이는 한편으로 법 앞에서의 평등으로 나타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의례교환의 대칭성을 통해 확인된다. 하지만 낙인과 수용소에 대한 고프먼의 연구는 사회가 그 내부에 일체의 존중의 의례가 사라지는 예외지대를 마련해 두고 있으며, 특정한 범주의 사람들에게 비정상의 낙인을 찍어서 배제와 조건부 통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음을 고발한다.

인격에 대한 의례
고프먼은 상호작용 질서가 개인들이 대면접촉상황에서 수행하는 상호작용 의례를 통해 표현되고 유지된다고 보았다. 상호작용 의례를 행하는 것은 상대방의 인격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에서의 그의 성원권을 인정하는 의미가 있다. 역으로 의례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이 한 명의 온전한 사람임을 부인하는 일이자, 그의 성원 자격에 대한 부정이다.

배제와 낙인
고프먼의 『수용소』 : 정신병원, 수도원, 교도소, 병영 등 총체적 시설이라 명명된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세밀하게 기술한다.
재소자의 인격은 의도적이건 아니건 체계적으로 모독된다. 직원은 재소자의 인격을 말살하여 다루기 쉬운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
『스티그마』 : 불안정하게 통합된 사람들, 즉 낙인찍힌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 사회의 낙인으로 취급되는 속성들 (1)신체의 괴물스러움, (2)정신적인 면에서의 결함, (3)특정한 인종, 민족, 종교에 속해 있다는 사실
낙인자와 정상인의 만남은 어떤 종류의 기만을 수반하곤 한다. 낙인자를 대상으로 한 사회통합 의례- 고아들에게 키스하는 연예인 등등-가 이를 보여준다. 정상인들은 낙인자들의 몸을 함부로 만질 수 있는 대상으로 취급하고, 낙인자의 편에서는 이러한 접근을 허용하는 것이 일종의 의무이다.

신분과 모욕
모욕이 의례적 질서의 일부를 이루고 있을 때, 즉 의례 코드 자체가 비대칭성을 띨 때 이는 그 사회에 신분 차별이 존재한다는 표시로 해석될 수 있다. 신분이란 어떤 위계화된 구조 안에 있는 고정된 위치들이 아니라 무리 짓고, 사회공간을 점유하고 경계를 만들며, 배제하거나 포함시키고 자리를 주거나 뺏는 어떤 운동의 효과이다. 그러므로 신분의 개념은 인정투쟁이나 타자화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사회의 발견
개인들이 신분과 무관하게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집단적 의례 및 상호작용 의례가 신분적 의례를 압도할 때, 사회에 대한 상상은 비로소 그 구성원들의 의식 속에 확고하게 뿌리 내린다.
신분을 법적인 관점에서만 정의할 경우, 현대사회에는 신분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베버는 신분을 사회적 위신과 사교 생활을 중심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함으로써, 현대사회에도 신분질서가 존재함을 시사한다.

굴욕에 대하여
신자유주의 하에서 모욕은 흔히 굴욕의 모습을 띤다. 이론적으로 모욕은 구조가 아니라 상호작용의 질서에 속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누구도 나를 모욕하지 않았다면, 내가 느끼는 굴욕감은 전적으로 나 자신의 문제가 되며, 신자유주의 전도사들은 이것을 자존감의 결여 탓으로 돌린다. 신자유주의의 모순은 상호작용 질서의 차원에서(즉 상징적으로) 모든 인간의 존엄을 주장하면서, 구조의 차원에서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단을 빼앗는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형식적으로는 평등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불평등하다.

5장 우정의 조건
인격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이 아닌 온화한 경멸 역시 상처를 준다. 자선은 되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므로, 그 안에 이미 상대방의 명예에 대한 평가절하가 들어있다.

순수한 우정과 순수한 선물
순순한 우정의 관념은 순수한 선물의 관념과 연결된다. 순수한 선물이란 경제적으로 의미를 갖지 않는 선물로, 물질적인 가치와 무관하게 상징적인 관점에서만 평가되는 선물을 말한다. 이는 경제활동과 선물 교환이 별 개의 영역이며, 개인들이 선물교환에 의지하지 않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얼굴을 유지하려면 사교라고 불리는 명예가 걸린 게임에 참여할 수 있어야한다. 선물은 이 게임에 사용되는 화살이자 방패이다. 경제력을 상실한 사람은 이런 무기를 살 수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게임에서 탈락한다. 경제적인 소외가 이리하여 사회적인 소외로 이어진다.

가부장제를 보완하는 국가
“경제적 자율성에 기초한 자유로운 관계”라는 우정의 이상은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혹은 타인의 경제력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를 간과한다. 독자적인 소득이나 재산이 없는 전업주부가 대표적이고(A), 실직이나 파산 등으로 경제력을 상실한 사람(B)도 해당된다. 한국사회는 B와 같은 사람들을 특수한 범주로 분류하여 관리하면서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거나 혹은 효도나 돌봄 같은 전통적인 가치를 강조하면서 가족에게 짐을 떠넘긴다. 간단히 말하면 B와 같은 사람들을 일차적으로 A의 위치로 옮겨 놓으려 하며,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만 공적부조 시스템을 가동한다. 우리는 ‘가부장제를 보완하는 국가’라는 말로 이러한 시스템을 정의할 수 있다.
가부장제의 문제점은 피부양자-비대표자가 부양자-대표자에게 쉽게 인격적으로 종속된다는 것이다. 가부장제에서 여자와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성원권의 불완전함은 우정의 제약으로 이어진다. 우정은 남성적인 미덕이며, 주로 남성주체의 인격적 성숙이라는 테마와 결부된다.

증여와 환대
데리다 : 순수한 환대 혹은 절대적 환대는 불가능한 이상이다.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는 주는 것 또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 그가 편안하게 사람을 연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하여 그를 다시 한번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환대는 자원의 재분배를 포함하다.
증여 대 환대.
증여는 인정의 문제이다. 주는 행위를 증여로 구성하는 것은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의 관계에 대한 특정한 해석이다.
환대 역시 주는 행위이지만, 이것은 증여로 계산되지 않는다. 환대란 힘을 주는 것이며, 받는 사람을 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공동체에 관한 두 개의 상상
우정의 조건은 절대적 환대이다.
절대적 환대가 사적 공간의 무조건적이고 완전한 개방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데리다가 그랬듯이 그러한 환대가 과연 가능한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절대적 환대가 타자의 영토에 유폐되어 자신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일, 그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일,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자리를 주는 일, 즉 무차별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사회 안에 빼앗길 수 없는 자리/장소를 마련해주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러한 환대가 필요하며 또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환대는 우정이나 사랑 같은 단어가 의미를 갖기 위한 조건이다.
환대에 대한 질문은 필연적으로 공공성에 대한 논의로 나아간다.(아동학대방지법, 청소년쉼터, 집 없는 사람에게 주거수당을 주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실업수당을 주는 일)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라는 현대적인 이상은, 이러한 공공의 노력을 통해서 실현된다.

6장 절대적 환대
환대한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자리를 준다/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딸린 권리들을 준다/인정한다는 뜻이다. 또는 권리들을 주장할 권리는 인정한다는 것이다. 환대받음에 의해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또 권리들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는 현대사회의 기본적인 작동원리이다. 첫째 모든 인간은 출생과 더불어 사람이 된다. 둘째 공적 공간에서 모든 사람은 의례적으로 평등하다. 셋째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다(정체성 서사의 최종편집권은 당사자에게 있다).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
절대적 환대는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이다. 이것은 환대가 면책 혹은 망각과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유교국가의 효와 충. 유교사회의 구성원들은 효와 충으로 사람다움을 증명하는 한에서, 조건부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의무와 빚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는 사회를 만들 수 없다.

복수하지 않는 환대
적대적인 상대방에 대해서도 환대가 지속되어야 한다. 환대란 어떤 사람이 인류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어떤 사람을 절대적으로 환대한다는 것은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 처벌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그의 사람자격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우리가 한번도 절대적 환대의 사회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운동의 현재 속에 그런 사회는 언제나 이미 도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