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데르트바써하우스 (Das Hundertwasserhaus)

Das Hundertwasserhaus in Wien

그림도구 : Tayasui Sketches

2008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놀러갔다가 방문했던 훈데르트바써하우스를 그려보았다. 

이 집은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예술가이가 건축가인 훈데르트바써(Hundertwasser)가 설계해서 1985년에 완공한 아파트이다. 

일반적인 건축규범을 따르지 않은 이 건물은 건물 외양의 독특함과 다양한 칼라로 유명하다.

거기에 더해 나무들이 집 내부와 지붕에서도 자라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창 밖으로 나무가지와 잎사귀들이 불쑥 나와있기도 하다. 

물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이라 내부를 볼 수는 없다.

아파트 맞은 편에 훈데르트바써 빌리지라는 건물이 별도로 있어 거기에서 훈데르트바써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기념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 

방문하고 나서 내 마음에 울림과 감동이 컸나보다. 

10년 전 기억인데도 그림을 그리고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다 보니, 마치 지난여름 다녀온 듯하다. 

암스테르담의 집들

암스테르담 운하지구의 좁고 긴 집들…

그림도구 : Tayasui Sketches

 

2017년 6월.

친구들과 암스테르담에 놀러갔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인데, 꼭 들러봐야 할 곳이 많은 도시라 무척이나 바쁘게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운하의 도시에서 유람선을 안타면 안될것 같아서 첫날의 마지막 일정으로 유람선을 탔다. 

배 안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암스테르담의 곳곳을 둘러보는데, 운하에 면해 있는 집들이 마치 동화 속 집들처럼 예뻐 보였다. 

이 곳의 집들은 여타의 유럽 집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듯 보였다.

자세히 보니 확실히 달랐다. 집의 입구 쪽 너비가 좁았다.

일반 유럽 집의 2분의 1정도 밖에 안되는 것 같았다.

한 거리에 다양한 집들이 더 많이 들어서 있어서(폭이 좁으니까), 전반적인 느낌이 비현실적이고  동화속 이미지처럼 보이는 듯 했다. 

나중에 암스테르담 집들이 좁은 이유를 찾아보니,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운하가 개발되던 17세기 경, 당시 집에 대한 세금을 전체 면적이 아니라, 땅 면적만 계산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땅의 면적을 줄이기 위해 좁고 높은 집들을 지었다고…

암스테르담은 살면서 총 3번을 방문했는데, 운하지구의 집들을 자세히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운하지구의 특이한 집들의 내부 구조가 너무 너무 궁금한데, 실제로 들어볼 기회가 없었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하지만 실제로 내부를 보게 된다면, 어쩌면 내 생각과는 달리, 사람 사는 데 다 거기서 거기라 별반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산마르코 광장 카페 플로리안

2018년 5월 28일,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카페 플로리안에 들렀을 때, 거기서 마신 고급진 차와 음료를 한번 그려 봄.^^

 

몹시 좁은 골목길들을 돌아돌아 겨우 산마르코 광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좁은 골목들과는 대조적으로 광장이 엄청나게 넓고, 또 사람도 그만큼 엄청나게 많은 것에 놀라고 말았다.

그래도 유럽의 관광지 느낌이 나서, 내가 지금 여행 중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잠시 행복감을 느꼈다.

이야~~~ 드디어 베네치아에 왔다!!!! 이런 느낌이랄까. 

 

광장을 잠깐 둘러보고, 사진도 여러 장 찍은 후, 광장 뒤쪽의  플로리안이라는 카페가 유명하다고 하여,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도 많은데, 그 만큼 비둘기들도 많아서, 음식을 비둘기들과 나누어 먹어야 할 정도였다. 

비둘기들이 음식을 막 채어 날아갔다. 

헐~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광장의 야외 카페는 전반적으로 좋은 분위기를 풍겼다.

날씨도 맑고, 바람도 살짝 불고, 차와 음료를 담은 식기와 쟁반도 고급스럽고…

 

라이브로 음악을 연주하는 팀이 있었는데, 유럽 음악을 연주하는 중간중간  각국의 관광객들을 위해 민속음악들을 연주하는 듯 했다. 

우리나라 아리랑 가락을 연주 하길래,  주변을 살피니 한국인 관광객들이 꽤 많이 앉아있었다. 우리 포함 4-5테이블 정도가 한국 사람인 듯 했다. 

 

흥겹게 앉아 음악을 들었지만, 음악 감상 비용이 1인당 6유로 라는 사실을 당시에는 몰랐다.

음료가 말도 안되게 비싸다는 사실은 그 때도 이미 알았지만….ㅠㅠ

영수증을 보고 잠시 베를린이 그리웠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도시. 그리운 베를린. ㅠㅠ

 

그림도구 : Adobe Draw

“면역에 관하여”를 읽고

이 책은 면역이라는 의학적 주제를 다룬 책이다. 그렇지만 의학책은 아니다.
면역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사실적 정보들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여러 가지 은유로 받아들인다. 질병과 백혈구, 병든 그들과 건강한 우리, 독성을 지닌 화학물질과 아름다운 자연, 적군과 아군, 필멸과 불멸 등의 은유. 그 은유에서 나와 우리, 백혈구와 자연은 언제나 건강을 대표한다. 반면, 세균, 그들, 화학물질 등은 건강하지 못한 것들로, 반드시 피해야 하는 것이 된다.

저자는 자신이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면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주변의 백인 중산층 부모들이 갖는 백신에 대한 두려움을 보고, 이 두려움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인문, 사회, 역사, 문학적인 차원에서 조사하고 숙고한다. 저자는 백신을 두려워하는 그들을 비난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외부에서 오는 것에 대해 일반적인 인간이 갖는 두려움의 근원을 찾고, 그것을 이해하고 그리고 나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책은 아킬레우스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인간이기 때문에 필멸해야하는 운명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스틱스 강에 그의 전신을 담가, 그를 불멸의 몸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손으로 잡았던 발목에는 강물이 닿지 않았고, 결국 그는 발목에 독화살을 맞고 죽음에 이른다. 이 신화에서 그리듯 우리 인간은 어쩔 수 없는 필멸성에 두려움을 갖는다.

백신이 등장한 초창기에는 외부물질이 몸 속에 주입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외부물질은 침해와 타락과 오염을 암시했다. 현대에도 우리는 백신이 질병을 예방한다는 믿음보다는 백신에 따르는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낀다. 이는 백신의 내용물이 화학성분이며, 화학성분에서 독성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독성에 대한 두려움은 이전에 오물에 대해 가졌던 두려움의 변형이다. 오물에 대한 두려움은 도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즉, 내가 도덕적으로 잘 살면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분위기이다. 이것이 변형되어 나타난 독성에 대한 두려움은 내가 나 스스로 건강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즉, 조심스럽게 살면서 타인과의 접촉을 제약한다면 질병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 하지만 질병은 남들에게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질병을 옮기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우리 몸의 침투성은 내 편과 네 편이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먹고 먹히면서 살고 있다.
1897년에 출간된 드라큘라에는 이러한 은유로 가득 차 있다. 드라큘라는 타락한 존재이고, 내 몸에 이빨을 꽂는 존재이며, 영국으로 들어온 외부인이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만 드라큘라인 것은 아니다. 수혈 받고 치료받는 과정에서 우리는 모두 드라큘라가 된다.

물론 사람들이 백신을 거부하는 데에는 자기 몸은 자기가 다스리고 싶다는 의지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각자에게 속한 것이지만, 동시에 더 많은 몸으로 이루어진 더 큰 몸 속에도 속한다. 우리 몸은 독립적이면서도 의존적이다.

책의 뒷부분에서는 <몸속 미생물 정원을 가꾸다>라는 기사를 소개한다. 몸은 이질적이고 낯선 것이라면 모조리 공격하는 전쟁기계가 아니다. 우리가 적절한 환경에서 다른 많은 미생물과 함께 균형을 이루어 살아가는 정원이다. 몸의 정원에서 우리가 제 속을 들여다볼 때 발견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타자다.

마지막 부분은 볼테르가 쓴 캉디드의 마지막 문장으로 마무리 된다.
“우리는 정원을 가꿔야 한다.”
우리의 삶이 필멸하리라는 것을 깨달을 때,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질병을 극복할 수 없음을 알 때, 즉, 우리가 더 이상 낙관적이지 않을 때, 저자는 우리가 가꾸는 정원이 세상으로 부터의 도피처가 아니라 세상을 가꾸는 장소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다. 면역은 공유된 공간이다.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개인적으로 집단 면역이 사회적으로도 또 개인적으로도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저자의 생각에 많은 부분 공감하며 읽었다.
면역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지만, 그 동안 사용된 면역에 대한 은유가 나와 질병의 관계 뿐 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동일하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 놀라움을 느꼈다. (질병을 외부로부터 오는 어떤 것으로 여길 때, 외국인에 대해서도 배타성을 갖게 되는 것 등)
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의 주장대로 우리의 태도는 우리가 사용하는 은유에 큰 영향을 받는 듯 하다.
그래서 저자가 강조하는대로, 면역을 외부의 적에 대항하는 전쟁 상황으로 볼 것이 아니라, 미생물과 함께 살아가는 정원으로 봐야하는 것이다.
그 은유가 점점 확장된다면, 국경의 의미가 점점 옅어져가는 현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평화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길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1일 1그림일기 한 달

그림일기를 시작한지 한달이 되었다.

1일 1그림일기 한달과정의 마지막 날이 된 것이다. 

그 기간동안 매우 즐거웠다.

 

그림 그리는 게 이런 즐거움을 줄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리는 동안은 주변이 사라지고 나와 그림만 남는 거 같은 신기한 경험을 했다.

신기한 경험은 큰 보상이 된다. 

자꾸 자꾸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기에 더해 관념적으로만 막연히 바라보던 주위환경을 감각적으로, 말하자면 아주 구체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늘 보았었지만 전혀 보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 차츰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새로운 경험도 큰 보상이 된다.

자꾸 자꾸 더 바라보고 싶은….

 

당분간은 계속 그림일기를 그려볼 생각이다.

이렇게 재미난 걸 굳이 멈출 필요는 없으니까.^^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라는 의미를 담아, 자신의 눈 앞에서 날고 있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소녀를 그려보았다.

 

그림도구 : Tayasui Sketch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