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이삭의 희생” 따라 그리기

오늘의 그림일기 미션은 샤갈 작품 따라그리기.(실은 어제의 미션이었음 ㅠㅠ 어제 일이 많아서 오늘 업데이트 함)

명화를 따라 그릴만한 실력은 아니지만, 샤갈의 “이삭의 희생” 이라는 작품을 따라 그려보았다. 

나는 샤갈의 그림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샤갈을 좋아하게 된 데에는 계기가 있다.

배철현 교수님이 쓰신 “신의 위대한 질문” 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였다.

책 중에서 아케다 이야기가 나온다. 

아케다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려고 했던 이야기 전반을 의미한다.

저자는 여러 거장들이 아케다를 주제로 그린 명화작픔들을 보여주며 신과 인간의 관계를 해석한다. 

아케다 이야기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카라바조나 렘브란트 같은 거징들도 아케다를 주제로 작품을 그렸다. 

모두 장엄하고 엄숙한 그림들이다.

그리고 후에 또 한 사람, 샤갈도 아케다를 테마로 작품을 그렸다. 

그런데 그의 작품에는 그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이 주제에 등장 시키지 않았던 이삭의 어머니 사라가 등장한다.

샤갈은 아브라함과 신의 이자관계만이 아니라,  그 동안 소외되었던  이삭의 어머니 사라와 십자가의 예수님, 그의 어머니 마리아, 유태인, 절규하거나 눈물흘리는 여자들, 허공에서 사라져 가는 인간들을 동시에 등장시켜서 신과 전체 인간이라는 다자관계를 그림 속에 구현한다.

내가 특히 감동 받은 점은 바로 여성들의 등장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창세기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만 의견을 묻고 이삭의 어머니인 사라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 늘 의문이었다. 

내가 어머니의 입장이 되고서는 그 의문이 더 커졌다.

성서 기록 당시야 그렇다쳐도 21세기에 와서도 여전히 가부장적 사고로 성서를 해석하는 내용들을 읽게 되면 마음이 갑갑해서 터져버릴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배철현 교수님의 책을 통해 만난 샤갈의 그림. 

터져버릴 것 같은 가슴이 해방의 출구를 찾은 느낌이었다. 

제목도 “이삭의 희생”이다. 

아브라함의 결단이 아닌 이삭의 희생.

그 동안은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사라의 절규.

희생하는 어린 아들과 절규하는 어머니는 그대로 십자가의 예수님과 어머니 마리아의 메타포가 된다. 

어머니와 아이들이라는 가부장 사회 내의 약자들이, 더 영향력 있는 인물들로 다가온다. 

여전히 아브라함이 중앙에 가장 크게 그려져 있기는 하지만, 아들들과 어머니들, 그리고 다른 이름없는 많은 이들이 사방에 배치되어 각자 자신들도 존재가 있음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오른쪽 위에 더 많은 이들이 있었지만 너무 많아서 다 못 그림 ㅜㅜ)

그러니 나처럼 주변인으로 살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 같은 사람도 소외시키지 않고 그 존재를 인정해주는 이 예민한 예술가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림 도구 : 

사진보고 종이에 스케치한 후, 스캔하여 아이패드 스케치스 앱으로 채색.

샤갈의 “이삭의 희생” 구글 이미지

https://www.google.de/search?q=샤갈+이삭의+희생&client=safari&hl=ko-de&prmd=ivmn&source=lnms&tbm=isch&sa=X&ved=0ahUKEwi69ebmtqjdAhUuMewKHdRlCxoQ_AUIESgB&biw=1024&bih=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