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속이기

(사진은 남편이 나를 위해 지난 연말에 선물 해 준 Adventskalender (대림절 달력) 맥주임. 기념으로 사진찍어 둠. 맥주 종류도 참 많다. 독일에서 사는 큰 낙 중 하나.)

 

인생에 낙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를 들자면 하루 일과를 다 마치고 밤에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맥주 한잔 마시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나도 나이도 점점 들고 건강도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2018년 새해 벽두에 신년 계획을 세우면서 이를 고려한 항목을 하나 적었다.

“집에서 혼술을 하는 경우 맥주 한 캔 이상은 마시지 않는다.”
(물론 손님이 집에 오셨다거나, 내가 밖에서 친구들과 만남을 갖는 경우는 제외)

일단 며칠은 큰 무리가 없었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누구나 사흘은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후 드라마를 보는 중간에 맥주 한 캔을 다 마시면 바로 냉장고로 달려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아니 이런이런. 사람이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고, 사람이 계획을 세웠으면 한 달은 넘겨야하지 않겠는가.

엄청난 내적 갈등 끝에 묘책을 하나 내었다.
뇌를 속이자.
뇌가 드라마에 빠져 정신이 없을테니 그 사이 뇌를 속여보자.
그래서 맥주 한 캔이 더 마시고 싶을 때는 내가 늘 사용하는 0.5 liter 맥주 잔에 물을 가득 담아 놓고 마셨다.
이미 한잔을 마셨으니, 같은 잔에 물을 마시면 내 혀는 알아도 뇌는 속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말하자면 물로 맥주를 만드는 눈속임 아니 뇌속임 마술.

그 결과는 ?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혼술 시 맥주를 한 캔 이상 마시지 않고, 심지어 그 외에 물 0.5 liter도 추가로 마시니, 안 좋은 건 줄이고 좋은 건 늘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본 셈이다.

그런데 뇌가 정말 나의 묘책에 속은 걸까? 아님 속은 척을 한 걸까?
자기계발적 인간인지라 내가 나 스스로를 이겨보겠다는 무의식적 욕구가 내 의지력을 우회적으로 발동시킨 걸까?

자세한 심리적 기제가 뭔지는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오늘도 나는 재미나게 드라마도 보고 맥주도 한 캔하고 물도 많이 마시고.
인생의 여러가지 낙 중 한가지를 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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