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좋은 곳에 데려다 주면 좋겠다.

좋은 신발이 좋은 곳에 데려다 준다고들 하던데…

오늘 남편한테 선물을 받았다.
스니커즈 두 켤레.
하나는 검정. 하나는 하양.
(같이 가서 고르긴 했지만, 결제는 남편이. ㅎㅎ, 나도 지난 달에 선물 한 개 이미 했음^^)

비싼 신발은 아니지만, 두 켤레라 맘에 든다.
왜냐면 의상에 맞춰서 어떨 때는 흰색을 신고, 어떨 때는 검은색을 신어야 되니까.

나는 키가 작은 편이라 높은 굽을 사랑했었다.
한 때 7cm 미만은 취급을 안 할때도 있었다.
9cm 힐을 신으면 기분이 아주 좋았다.
공기도 윗 공기는 다른 것 같고, 시야가 달라 지니 세상도 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이힐에 치마를 입으면 예뻐보인다는 칭찬에 기분도 좋았고.

하지만 지금은 납작한 신발만 신는다. 그냥. 편해서.
키 작은 게 뭔 흠인가 싶어서.
발, 다리, 허리가 아프기도 하고.
그리고 자주 많이 걷고 싶어서.

그래서 오늘도 걷기 편한 스니커즈를 골랐다. 멋과 실용성을 겸비한 아이템 이라고나 할까.

웬일로 내일은 따뜻할 예정이라고 한다.
겨우 내 신었던 앵글 부츠 잠깐 벗고, 스니커즈 한번 신어봐야겠다.
내일부터 써머타임도 시작되니까. 마음은 봄 인양.

이 신발들이 진짜로 날 좋은 곳에 데려다 주면 좋겠다.

꼭 어떤 특정한 좋은 공간이라기 보다는,
좋은 사람들과 만나 얘기 나눌 수 있는 곳으로.

주변의 아름다움을 자세히 관찰 하면서 걸을 수 있는 동네 산책길로.
혹은 먼 곳에 대한 동경을 현실화 할 수 있는 여행지로.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가족에게든, 친구에게든, 낯선 이에게든.

좋은 곳으로.

생각들아, 꼼짝마라.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블로그를 하게 되면서 생긴 습관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어떤 글감이 떠오를때마다 아이패드 메모장에 간단히 내용을 적는다.
핵심 단어 몇 개 혹은 짧은 문장으로.
그리고 메모장에 있는 글감들을 이미 블로그의 글로 만들었다면, 그 내용을 지운다.
이렇게 하나 하나 쓰고, 하나 하나 지운다.

그러다가 어느날 글감을 새로 적은 날보다, 블로그에 글을 업데이트 한 날이 더 많아서, (혹은 메모장에 있는 글감들이 당장은 글로 만들어지기엔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라서), 쓸 만한 글감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날이 온다. 오늘 같은 날.

그럴 땐 블로그 업데이트를 안 하면 아주 간단히 문제가 해결된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 블로그 글쓰기 과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난감한 상황을 반드시 극복해야만 한다.

그래서 생긴 두 번째 습관. 바로 옛날 일기장이나 수첩 다시 뒤지기이다.
거기서 가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난다.
오. 내가 이런 생각도 했었다니 하면서 감탄하기도 하고, 옛날과 생각이 좀 달라진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아래는 2014년에 아이패드 일기장 앱에 써 놓은 글.

“무언가 할 일이 없을 때 마침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두곤 했다.
(중략)
대부분이 허접스런 생각들이지만 그래도 어떤 것들은, 오… 내가 이런생각을 했었단말야? 하고 자뻑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뇌의 배신이란 책을 보니까 멍때리고 있을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하더라.
하지만 계속 멍때리기만 하면 그 아이디어들도 그냥 날라가 버리겠지. ㅎㅎ
그렇지만 수첩에 재빠르게 적어두면 절대 도망갈 수 없을 것이다.

생각들아, 꼼짝마라.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음….수첩을 아이디어포획자라고 부를까?”

누구 보라고 쓴 글이 아니라서 그냥 의식의 흐름 수준이다.
뭐,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뭔지는 알겠다.

생각은 잡아두지 않으면 다 날라간다. 생각을 포획해서 수첩에 적어라.

그 전에는 수첩에 적어라.가 마지막이었는데, 지금은 그걸 잘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려라.가 추가 되었다.

암튼…. 지금 현재 내 메모장엔 하나의 글로 만들어질 만한 글감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내일 쓸 글감을 마련하기 위해선 뭐든 재미난 일을 해야한다. 재미난 일.^^

마음은 스물 다섯

거울을 볼 때면 엄마가 몇 년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할머니도 마음은 열일곱이라고 하셨는데…”

엄마도 거울을 볼 때면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하신 얘기일 것이다.

그 때는 그 얘기를 듣고 그냥 웃었다.
아직 내가 젊다고 생각해서 그랬었는지, 그 말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그 말이 생각난다.

나도 이제 조금씩 늙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서리 맞은 여자처럼 정수리가 어느 새 하얗다.
아무리 화장으로 얼굴을 잘 커버해도, 사진을 찍으면 늙은 여자가 찍혀 있다.

눈이 침침해서 안과를 갔더니, 이 나이에는 그게 정상이란다. 좋은 돋보기를 사서 쓰라고.
이가 아파서 치과를 갔더니, 이는 멀쩡하고, 잇몸은 이 나이엔 원래 그렇단다.

이렇게 불편한데 이 나이엔 원래 그렇다니…
100세 인생, 아직 반환점도 안 돌았는데…
나는 아직 젊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고나서 부터 인가보다.
나도 종종 할머니의 열일곱을 생각 하는 게.
사는 데 조금씩 조금씩 불편한 게 생겨서.

내 마음은 몇 살일까?
내가 제일 자신감 뿜뿜했을 때가 언제였을까? 스물다섯?

그래 그럼 마음은 스물 다섯으로 하자.

마음은 스물 다섯.

사 놓고 안 읽은 책들

2014년 조던 엘렌버그라는 수학자가 킨들의 스포트라이트 기능을 이용한 흥미로운 분석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베스트셀러 중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구입한 사람들이 그 책을 평균적으로 2.4%만 읽었다는 분석결과를 낸 것이다.

물론 이게 남 얘기가 아니다.
나도 “21세기 자본”을 어렵게 구입해 놓고 19p.까지 읽었으니까.ㅜㅜ
(그런데 저는 엘렌버그님 책 “틀리지 않는 법”은 다 읽었습니다. ㅎㅎ)

내 책장에는 이렇게 사 놓고 안 읽은 책들이 너무 많다.
어디 종이책 뿐일까. 전자책은 안 읽은 책의 숫자가 나를 위협할 정도이다.(무서워…ㅜㅜ)

이번 달에는 조금만 사야지, 조금만 사야지 하다가도, 무슨 무슨 포인트를 준다, 무슨 무슨 할인을 한다고 하면, 장바구니에 있는 애들을 마구 마구 결제해 대는 나를 발견한다.
스스로는 합리적 소비자라고 자부하는데, 이상하게 책 구입에는 합리성이 발휘되지 않는다.

그런데 살 때는 그렇게 절실해 보였던 책들이, 왜 방치된 것일까?
나름 생각을 해보았다.

첫째, 구입 당시 너무 재밌을 거 같고, 내용이 궁금해서 샀는데, 새로 나온 책들이 더 재밌어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언젠가는 꼭 읽으리라)
둘째, 구입할 당시에는 나의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관심사가 약간 바뀌어서 흥미를 잃었다. (다시 관심을 갖게 될까)
셋째, 구입할 당시에는 책의 두께에 상관없이 호기롭게 구입하였는데, 두께에 기가 눌려 다 읽지를 못했다. (넘아야만 할 산인데…넘을 수 있을까)
넷째, 구입하고 보니 내용도 좋고, 관심사에도 맞는데, 글이 너무 난해하고 어려워서 다 읽지를 못했다. (이것도 넘어야 할 산. 산 넘어 산이네)
다섯째, 구입할 당시 책 제목이나 목차에 홀려서 샀는데, 읽다보니 내가 생각한 내용이 전혀 아니어서 읽기를 중단했다. (왜 샀을까)
여섯째, 친구들이 빌려주는 책들을 먼저 읽다보니, 내가 산 책의 순위가 밀렸다. (책 빌리는 데에도 욕심을 덜 부리자)

뭐… 그 외에도 핑계거리는 많을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대책이 절실하다.
앞으로는 사 놓고 안 읽은 책 중심으로 독서를 해야 할 듯하다. 물론 신간도 읽기는 해야겠지만. 구입도 자제하고. (천 삽 뜨고 하늘한번 보는 것처럼, 두 권 읽고 한 권 사기)

그러나 구입한 책 목록을 보다보면, 나 스스로에 대해 좀 더 알게 되기도 한다.
나의 관심사가 바뀌어가는 과정을 보면, 내 사고의 변천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니까.

하릴없이 봄을 기다리는.

어릴 때 몸에 각인된 계절 감각은 바뀌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나에게 3월은 계속 봄이다.
실상 베를린의 3월은 겨울이고, 여기 산지가 20년인데도 그렇다.

1998년 3월 베를린 테겔 공항을 통해 베를린이라는 도시에 처음 도착했다.
이 도시에 대한 첫 인상은, 공항 문을 열고 밖에 나갔을 때 느꼈던 엄청난 추위였다.
그 이후 베를린은 나에게 늘 추운 도시였다.

그럼 이제는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3월에 혹시 봄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물론 머리로는 포기했다.
하지만 마음이 그렇지가 않다.

거리의 쇼윈도에는 2월부터 이미 샤랄라 봄 옷들이 진열되어 있다.(왠지 늘 그렇다.)
길거리를 걸을 때마다 욕을 한다.
이렇게 추워죽겠는데 웬 봄 옷? 장난하나?
그래 놓고서는 20년째 같은 푸념이네. 하고 혼자 웃는다.
(8월경엔 가을 겨울 옷들 진열이 시작되는데, 그 땐 괴리감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곧 다시 추워질 거니까…^^)

어제는 함박눈이 내렸다.
정말 예쁘게. 소로록… 소로록…
내일도 눈이 온다고 한다.
잠깐 따뜻해진다는 예보도 있지만, 믿어도 될까?

날씨에 일희일비하는 내가 싫지만, 여기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만나면 날씨 얘기부터 하는 게 일상.
너무 춥지 않아? 너무 매일 비가 오는 거 아냐? 너무 해가 없는 거 아냐?
zu kalt, viel Regen, wenig Sonne…

3월의 봄을 포기하면 기분이 좀 더 나아질 수도 있을 텐데.
참 포기가 안 된다.
내 몸의 고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