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책의 유익함

빌린 책을 지금 쌔가빠지게(!) 읽고 있다.
하나는 빌린 지 한달되었고. 하나는 보름도 넘었는데, 그저께서야 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왜 진작 읽지 않았을까, 빌린 책부터 읽자는게 내 주의였는데…. 이것도 늙음 증세인가)
도로 가져다줘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책은 다 읽고 싶고.
쌔도빠지고 눈도 빠질 지경이다.( ㅎㅎ 제가 오바가 좀 심하답니당.^^)

원래 나는 웬만하면 책은 사서 읽는 주의인데, 가끔은 이렇게 빌릴 때가 있다.
독서모임에서 친구들이 책추천도 해주고 동시에 친절하게 책도 빌려주기 때문이다.

보통은 모임에서 멤버가 소개하고 발제한 책을 빌리는데, 생소한 주제일 경우가 많다.
생소하고 모르는 내용이기 때문에 빌린 책은 소중하다.

이번에 빌린책,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 도쿄, 서울”도 그렇다.
도시, 건축, 모더니즘, 제국주의, 식민지 그런 내용이 한 가득인 책인데, 역사는 아무리 읽어도 계속 구멍이고, 건축은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추천받지 않았다면 절대 자발적으로 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어쨌든 지금은 이 책을 읽고 있고, 베를린 역사, 서양건축의 역사, 프로이센의 독일 통일 등에 대해 알게 되었다.
베를린에 살면서도 평생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를 귀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이제 1부 읽어서 2부 3부에 나오는 메이지 시대 도쿄나 일제강점기 경성으로 불리던 서울 등등은 아직 모른다.)

다른책은 “작은 것들의 신”인데, 인도의 작가가 쓴 소설이다.

이 책은 스토리가 기승전결도 아니고, 시간과 공간과 사건이 뒤섞여 있다.
너무나도 문학적인 책이고, 예술적인 책이라서, 만약 추천받은 책이 아니었으면 몇 장 읽어보고 끝까지 다 못 읽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오분의 일밖에 안 읽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너무 복잡하고 엉킨 실타래 같다.
뭔가 큰 일이 일어나서 한 가족에게 파국이 오긴 했는데, 그게 무슨 사건인지 아직도 모른다.
그래서 궁금하다. 뒷 얘기가.
나중에 실타래가 다 풀린다면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 같다.
문학의 기능 중 하나니까. 카타르시스.

암튼 감사하다.

지인의 추천은 힘든 책도 다 읽게 한다.^^
그리고 다 읽고 나면 큰 산을 넘은 뿌듯함도 느끼리라.

그렇다. 빌린 책은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나에게 좀 더 넓은 세계를 알려준다.
그래서 내 독서의 범위를 확장시켜 준다.

빌린책은 아주 아주 소중하다.

그치만, 얘네는 인간적으로 너무 두껍다.ㅠㅠ
하나는 783페이지(각주 빼도 640페이지), 하나는 480페이지.

오늘도 꼼짝없이 앉아서 독서.

(3월 11일 새벽에 올리고 있지만, 실은 3월 10일 아침에 쓴 글임을 알려드리고, 실제로도 하루 종일 책 읽다가 자다가(감기 몸살 중) 했음을 알립니다. ㅎㅎ)

The Art Of Banksy 관람 후기

-사진은 전시회장 안 기념품 가게에서 구입한 엽서들.

지난 주에 아직도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영국의 Graffiti 작가인 Banksy 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선물 가게 지나야 출구” 라는 영화를 보고 뱅크시를 알게 되었고, 영화를 본 이후에는 그래피티에도 관심이 생겼다.

전시회를 한다고 했을 때,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거리에 그려 놓은 그림을 어떻게 전시한다는 것일까? 거리의 사진을 전시한다는 것일까?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두번째 의문은, 그의 작업 대부분이 전쟁과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것을 주제로 하고, 예술의 상업주의도 반대하던 분인데, 전시회 공간에 비해 전시회 입장료는 왜 이다지도 비싼가(14.50€) 하는 것이었다.

첫번째 문제는 전시장에 갔을 때 저절로 해결되었다.
전에 뱅크시의 매니저 역할을 하였던 Lazarides 라는 분이 전시 큐레이션을 했는데, 대부분은 개인소장품들을 모아서 전시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시된 작품들은 뱅크시가 거리에 그린 모티브랑 같은 모티브를 천이나 종이에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하거나 스탠실한 작업들이었다.
그 외 설치와 조각도 있었고, 뱅크시의 영화도 짧게 상영되고 있었다.

두번째로 작가의 신념과 대비되는 듯한 전시회의 성격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찾아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뱅크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전시 큐레이터인 Lazarides 는 뱅크시 메니저로 11년 간 함께 일했지만, 현재는 함께 일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그는 이미 유럽 여러도시에서 “The Art Of Banksy” 전시회를 순회 개최 하였으며, 베를린에서도 두 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열리는 전시회라는 점은, 뱅크시의 공식 홈페이지 (banksy.co.uk) 에 적힌 문구를 보면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거기에 적힌 문구는 다음과 같다.
“Banksy is NOT Facebook, Twitter or represented by Steve Lazarides or any other commercial gallery.”

전시회를 여는 과정에 작가 자신이 이렇게 빠져 있는 줄 미리 알았더라면, 전시 방문에 좀 고민을 했었을텐데….
전시 홍보에는 그런 멘트가 1도 없었으니…(그런 멘트를 홍보에 쓸리가 없지.ㅠㅠ)

영국까지 가서 그의 작업을 볼 기회는 한 동안은 없을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시회를 통해 뱅크시의 작품을 만난 것은 개인적으로는 참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뱅크시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괜히 남 좋은 일만 한건가 하고.

아무튼, 그의 작품을 보고 느낀 점을 결론으로 쓰겠다.
그의 작품은 단순하지만 (밤에 빨리 그리고 튀어야 되는데, 단순한 게 당연하다), 그 단순함 덕택에 그가 세상에 말하고픈 메세지가 더 정확하고 더 강렬하게 전해지는 듯 하다.

선물가게 지나야 출구. 나는 그게 좋다.

오랜만에 시내에 나갔다.
마치 동면하둣, 사람들도 최소한으로만 만나고, 동네도 잘 벗어나지 않은 겨우살이었지만 오늘은 하루 휴무인 남편을 졸라서 시내에 갔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햇볕이 좋았다.

목적지는 서베를린의 중심지에 있는 쇼핑몰인 Bikini Berlin.
쇼핑을 하려 했던 것은 아니고, 쇼핑몰에서 특별한 전시회가 열린다고 해서 모처럼 외출을 감행한 것이었다.

 


전시회의 제목은 “ The Art Of Banksy“로, 영국의 그래피티 작가인 뱅크시의 전시회였다.
아직도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미스테리한 인물이지만, 2010년도에는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도 변조한 상태로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라는 영화도 찍었다.

이번 전시회 역시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가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지만, 그 누가 선물 가게를 비난할 수 있으랴.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치 못하듯, 나도 선물가게를 지나치지 못하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난 선물가게를 꼼꼼히 돌아보고 화집이랑 엽서를 구입했다.
뱅크시의 그래피티가 그려진 티셔츠랑 가방도 너무 너무 갖고 싶었지만, 경제활동하지 않는자가 그리 욕심을 부리면 안된다는 자각에 그런 품목들은 사지 않았다.

(* 뱅크시 전시에 관한 내용은 별도로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기다려 주세요~)

 

전시회장을 아쉬운 마음으로 나와서는 쇼핑몰을 둘러보았다.
매장 안까지 둘러보기에는 이미 전시회에서 체력을 소진하였으므로, 매장 밖에서만 구경하였다. 오늘은 그냥 윈도우 쇼퍼.

이 쇼핑몰의 아주 대단한 장점은 유럽최대 동물원인 Zoo Berlin 과 바로 맞대고 있어, 쇼핑몰 테라스에서 동물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추운 날씨라 나와 있는 애들이 있나 걱정했는데, 몇몇 애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원숭이의 한 종류인 듯 한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동물 식물의 종류에 관해서는 문외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 몰라서 무례할 정도이다.
돌아다니는 애들을 보니 정말로 강렬하게 새빨간 레드 힙이다! 원숭이 엉덩이는 진짜로 빨갛구나. 그래 그랬어…

날씨가 너무 추워, 볼이 아렸다. 머리 빗는 브러쉬로 얼굴을 두드려 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쉽지만 얼른 시내 관광자 모드를 끝내고 집으로 향했다.

 

집근처에 다 와서는 오늘 외출의 마무리로 카페에서 차 한 잔.

함께 동행했던 남편은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무척 보람찬 하루였다.
너무 추워 에너지를 많이 써서 그런지, 아니면 그간 집에서만 지내서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몹시 피곤하긴 했지만…^^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죽은 호랑이 전부가 가죽을 남기는 건 아닐테고, 죽은 사람들이 다 이름을 남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느 면에서는 맞는 말인 것 같다.

내가 자주 다니는 주택가 길에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단 인식하게 되면 특별해 보이는 대리석 명패가 벽에 붙어있는 집이 있다.
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현재는 체코 지역의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가 요양차 베를린에 와서 몇 달간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십수년 가까이 그 거리를 다니는 동안 나는 그 명패를 보지 못했다.
약 2년 쯤 전에 친구가 카프카가 살았던 집이 이 길 어딘가 있다며 알려주었다.
그제서야 그 집 벽에 작지 않은 크기로 붙어있는 그 명패를 보게 되었다.
주변의 집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그 집에는 아마도 보통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정작 카프카가 태어나고 살았던 도시 프라하에 갔을때는 카프카의 흔적을 주의깊게 보지 못했다. 카프카를 아직 모를때여서 혹은 함께 다니는 이들의 관심사가 달라서 그랬다. 카프카가 작업실로 쓴 집이 있다는 황금소로에 아주 잠깐 들른 기억은 나지만, 그 때에는 큰 감동은 없었다.

프라하에는 카프카 살았던 집이 있는게 당연하고, 본에는 베토벤, 잘츠부르크에는 모차르트, 바이마르에는 괴테의 집이 있는 게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베를린에 아주 잠깐 머물었던 집에까지 그의 이름을 붙여 놓은 건 정말 의외였고, 또한 감동적이기도 했다.

이름을 남긴다는 게 이런걸까?
한때나마 머물렀던 곳이라면 그 어디에나 이름이 남는다는 것.
카프카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보면 그를 좋아하게 될 수 밖에 없는데, 좋아하는 이의 흔적을 찾게 되면 기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때마다 그길을 들러본다.

하지만 젊어 병들어 죽은 당사자에게는 이름이 남는다는 게 아무 의미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름은 죽은 이의 명예라기 보다는 남은 이들에게 주는 선물일 것이다.
내가 죽어 내 이름을 타인들에게 선물로 남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이름은 감사한 맘으로 받는다.
프란츠 카프카

프란츠도 그렇고 카프카도 그렇고
참 멋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