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6031

어제 집에서 혼자 영화를 봤다.
영화를 딱히 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글은 써야겠고 글 소재는 없고 해서 영화를 봤다.
주객전도도 이런 주객전도가 없다.
하지만 한밤중에 혼자서 영화 보니까 너무 좋더라.

어제 밤 급하게 고른 영화는 짐 자무쉬 감독의 2013년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였다. (이 후 글에 스포일러 많습니다.)
틸다 스윈튼과 톰 히들스턴이라는 매력적인 배우들이 나오는 게 선택의 주요요인 이었다.
중년의 사람들이 이렇게 매혹적이어도 되는지.
중년의 사람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는 게 가능한 지.

문학과 음악을 사랑하는 예술가 커플인 뱀파이어의 이야기로, 어쩌면 내용은 없고, 탐미적인 이미지만 남는 영화라는 평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예술가이면서도 예술에 대한 고뇌도 없고, 인간과 삶에 대한 싫증도 결국 간간히 드러나는 고질병의 하나로만 치부되며,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열되지만 그저 이름만 나열될 뿐, 그들 삶에 끼친 영향은 전무하다.
영화에서 삶의 교훈을 기대하는 건,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스타일에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21세기 뱀파이어들은 더 이상 사람 목을 물지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다.)
그러니까 피도 우아하게 와인 마시듯 음미하며 마신다. 우아하게.
뱀파이어 부부는 잠도 우아하게 잔다. 마치 두 몸이 행위예술가가 설정해 놓은 듯이 포개져서 우아하게.
늘 끼고 다니는 장갑과 선글래스는 패션 아이템이 된다.(같이 클럽에 간 인간이 자기도 선글래스를 따라서 낀다. 왜?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게 멋져 보이니까. 그가 좀 더 오래 살았었다면 장갑도 꼈을 것이다.)

영화는 아름다움만을 위해 진행되는 듯 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반전을 준다.
21세기 스타일로 우아하고 아름답게 살던 뱀파이어 부부에게 엄청난 위기가 다가온다.
바로 순수한 피의 공급책이자, 그들의 인생 선배인 뱀파이어가 세상을 뜬 것이다.
이 위기는 너무나 직접적인 문제다. 바로 생존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피를 공급 받을 수 없다는 것. 결국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
그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삶의 종말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하지만 그들 앞에 나타난 젊고 아름다운 연인들. 사랑을 나누느라 주변에는 관심도 없다.
죽음을 기다리던 뱀파이어 부부의 마지막 결심.
21세기지만 15세기에나 하던 짓. 즉, 인간 사냥을 다시 하자고.
그리고 그 연인들에게 다가가며 영화는 끝난다.

예술과 문학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그들이지만, 생존의 위기에서는 동물적인 본능이 앞설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사람도 동물이기에 어쩔 수 없다. 뱀파이어가 있다면 당연히 그들도 그럴 것이다.
삶에 대한 의지. 생존 욕구.

영화의 마지막을 보니 제목이 이해가 간다.
제목에 나오는 ‘오직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 즉 살고자 하는 사람들만 살아남는다는 뜻이란 것을.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 후한 점수를 줄 것이다.
생존 문제가 없을 때는 우아하게 살고, 생존 문제가 걸렸을 땐 동물처럼이라도 어떻게든 살자.
나도 그럴 것이다. 어떻게든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