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감상문

사과나무 탁자와 아름다운 벌레 이야기

소로가 쓴 “월든” 마지막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사람들 사이에 널리 전해지던 이야기라고 한다.

어느 농부의 집 부엌에 60년 동안 놓여있던 오래된 사과나무 탁자에서 아름다운 벌레가 나왔다. 그 벌레는 사과나무가 아직 살아있을 때 그 안에 자리 잡은 알에서 나왔는데, 몇 십년이 넘는 오랜 세월 탁자 안에 잠들어 있다가 열기에 부화되어 몇 주간 탁자 속에서 나무를 갉아 먹으며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었다.

소로는 말한다.
“이 얘기를 듣고 부활과 불멸에 대한 믿음이 더욱 굳건해지지 않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
(중략)… 그리고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온 애벌레는 날개 달린 아름다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으리라. 메마른 인간 사회에서도 가장 볼품없고 아무도 원치 않는 가구에서 뜻하지 않게 날개 달린 아름다운 생명이 탄생해 마침내 황홀한 여름을 누리게 될지 아는가!”

결국 긴 긴 어둠의 시간을 겪은 자가 아름다운 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삶에 대한 의지를 가장 아름답고도 감동적으로 표현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많이 유명하긴 했나보다.
허먼 멜빌의 단편 소설 “사과나무 탁자 혹은 진기한 유령 출몰 현상”에서도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주인공인 ‘나’는 새로 구입하여 살게 된 집의 다락방에서 나무 탁자 하나를 발견한다. 그 다락방은 귀신 붙은 방이라고 여겨져서 ‘나’도 이사 후 5년 동안은 그 곳을 가보지 않았다. 어쨌건 탁자를 발견한 ‘나’는 그 사과나무 탁자를 거실에 두고 식사용으로도 사용하고 독서용으로도 사용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혼자 탁자에 앉아 책을 읽는데, 괴이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틱… 틱…. 이제 이 이야기는 초현실적인 존재에 대한 식구들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전환된다. 긴 공포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 월든에서 소로가 전해 준 이야기와 같은 내용이 펼쳐진다. 즉, 탁자에서 벌레가 나온 것이다. 그것도 두 마리나.

그 벌레들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수십년 세월 탁자 안의 알에 갇혀있다 부화되어 나무를 갉아먹으며 힘들게 힘들게 바깥 세상으로 나온 벌레의 운명은?
한 마리는 일하는 하녀에 의해 불 속에 던져졌고, 또 다른 한 마리는 그나마 하루를 더 살고 죽었다. 그 이후 벌레의 아름다움에 빠진 딸들에 의해 방부 처리되어 은으로 된 병에 보관되긴 했지만.

사람들은 척박한 환경, 고된 삶의 과정에서도 그것을 이겨내어 결국 빛을 본 삶의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소로의 탁자 속 벌레 이야기도 그렇다. 그것은 역경을 이겨낸 이들에 대한 존경이며, 삶에 대한 예찬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동화의 상투적인 엔딩인, “왕자와 공주는 그 이후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답니다”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닐까.

멜빌의 소설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식탁을 뚫고 나온 벌레의 모습은 무척 아름다웠고, 그 벌레는 천사같이 거룩한 벌레였다.
그런데… 그런데… 이 동화같이 아름다운 결말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가.
이 거룩한 벌레 역시 보통 다른 벌레와 마찬가지로 취급되어 불 속에 던져졌고, 또 다른 거룩한 벌레는 빛을 보기 위해 어둠 속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진하여 죽어버렸다.

난 회의주의자이긴 하지만, 비관주의자는 아니다.
찰나의 순간을 살더라도 빛을 경험했던 벌레의 삶은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하나의 과정에 따른 결말만을 생각한다. 벌레가 세상에 나오게 된 과정만 중시하지 그 이후 벌레가 겪게 될 또 다른 과정에는 관심이 없다.
하나의 과정이 끝나도, 우리의 삶은 계속 지속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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