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미안 수업”을 읽고
사진 작가이면서 오디오 평론가이고, 미술과 디자인까지 전방위적으로 다루는 아트워커 윤광준님의 책 “심미안 수업”을 읽었다.
그런데 도대체 ‘심미안’이란 무엇일까? 심미안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아름다움을 살펴 찾아내는 안목’. 척 보면 딱 아는 게 아니라 살펴서 찾아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심미안이라는 단어에는 능동적인 행위로서의 의미가 있다. 저자 역시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각도 모두 의식적인 활동’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을 더 인용해 보겠다.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그 내용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 (중략)…. 심미안은 타고난 능력이라기보다 커가는 능력이다, 스스로 훈련하는 것이다.’
이 훈련을 위해 저자는 본인이 경험하고 활동하고 있는 5가지 분야의 예술에서 아름다움 찾는 법을 알려준다. 그 다섯 가지 분야는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이다. 예술의 분야는 더 다양하겠지만 저자 자신이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는 분야만 골랐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각 정보에 예민한 편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예술 분야도 음악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각적인 예술에 해당된다. 예술을 공부한 적도 없고, 예술 애호가라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내 발로 내 돈 내고 미술 전시회에 가는 것을 즐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도 자연경관 보다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유적지, 즉, 유서 깊은 건축물을 보러 가는 경우가 많다. 물건을 고를 때도 기능보다도 예쁜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이다.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 놓은 것을 나 나름대로 해석하는 재미랄까.
하지만 내가 해석하기 어려운 분야가 있으니, 바로 음악이다. 음악이라는 것은 창작자가 너무 많다. 무슨 뜻이냐면, 어떤 클래식 곡의 경우 작곡가 외에도 수 많은 연주자들이 있기 때문에 작곡가의 의도만 가지고는 그 음악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연주자들마다 다른 해석이 존재하고 나는 또 그것을 해석해야 하고…. 그래서 지레 포기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음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청각의 아름다운 세계를 나 스스로 막아버릴 필요가 있을까.
또 한 가지 해석이 어려운 분야가 있으니 바로 문학이다(이 책에서 문학을 다루지는 않는다). 문학작품을 많이 읽지도 않는데다가, 어렵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의 가장 최고봉은 문학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이해하기가 제일 어려우니까. 여우의 신포도 라고나 할까.
한 동안 세계 고전 문학을 의무감을 가지고 읽었던 적이 있었다. 지루하기만 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놀라움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남들이 아름답다고 선정해 준 것을 읽고 난 이후에는 나 스스로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하는데 그런 눈이 없다. 나는 아직도 옛날 옛적 이미 검증된 소설들을 주로 본다. 옛 고전에는 해설도 많아서 이해도 용이하다.
요즘 동시대 문학에 대해서는 스스로 읽을 책을 골라내는 안목이 없다. 내가 읽은 이 책이 과연 아름다운 책이었던가? 아닌가? 판단이 안 선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장래희망이 작가였던 사람치고는 너무 노력하지 않는다. 위에도 적었듯이 심미안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훈련하는 것이라는 데 말이다.
문학작품에 대한 심미안을 갖는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심미안을 갖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간접적이긴 하지만, 다양한 인간의 표본들을 만날 수 있고, 거기에서 배운 경험을 통해 사람들 가운데서 아름다운 이들을 찾아내거나, 혹은 보통 사람들 안에도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안목을 갖게 되는 것.
가장 가지고 싶은 심미안이지만, 갈 길이 멀다. 아름다운 문학 작품을 고르는 일이 더 큰 고비이기 때문이다.
(원고지 10.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