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ily Life 일상

두 사람의 드로잉 클럽

아침 일찍 작은 스케치북과 색연필 10자루를 챙겨서 그림을 그리러 나갔다. 야외에서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왠지 대단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은 아마추어 그림 모임에 참석하는 것뿐이다.  그 모임의 멤버는 K와 나, 둘 뿐이다. 원래는 셋이었는데, 한 명이 취업을 하면서 지금은 둘이 됐다. 적은 멤버의 장점은 그림 장소를 결정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한 명이 여기 어때요? 하고 다른 한 명이 좋아요 하면 끝이다.

오늘의 그림 장소는 루드비히키르히플라츠(Ludwigkirchplatz-루드비히 교회 광장)였다. 챗지피티에게 베를린에서 어반스케치하기 좋은 장소를 물었더니 이곳을 포함한 여러 곳을 추천해 주었고, 우리는 이곳을 골랐다.  루드비히 교회 광장은 구글지도의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장소였다.  붉은 벽돌의 교회, 옥색빛 첨탑, 푸른 나무, 구름이 낀 다소 흐린 하늘까지. 교회 앞에는 작은 잔디밭과 분수대도 있었고, 그 바깥쪽을 둘러싸는 듯이  벤치가 10개 정도 놓여있었다. 그림 그리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게다가 어제까지만 해도 30도가 넘는 폭염이었는데, 오늘은 서늘하고 바람도 약하게 불고 있었다. 

우리는 두 주 만에 만났다(보통은 한 주에 한 번씩 만난다). K가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K는 보통 여행을 가 있는 동안에도 늘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녀의 여행 그림을 기대했는데, 이번엔 한 장도 못 그렸다고 했다. 나도 지난 5월에 시작한 펜드로잉을 거의 한 달이 지난 지난주에야 겨우 마무리를 했다. 그래서 그 그림을 핸드폰으로 보여줬다. 그리고 오늘 처음 들고 간 파버카스텔 색연필을 K에게 한번 써보라고 건넸다. 자신의 스케치북에 몇 번 색칠을 해보던 K는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도 구입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지름신을 부르는 경향이 있다.

교회 뒤편 놀이터에서는 유치원 아이들이 요란스럽게 뛰어놀고 있었지만, 교회 앞쪽으로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조용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벤치에는 잠시 앉았다가 가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이렇게 밖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보통은 할머니들이 와서 뭘 그리는지 물어보거나 어린아이들이 다가와 스케치 북을 자세히 들여다보곤 했지만, 오늘은 초등학생 정도 되는 여자아이가 내 스케치북을 멀찍이 쳐다보고는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낯가림이 심한 나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림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물론 K는 자신의 그림을 다 완성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기에 우리도 자리를 떴다. 우리가 헤어지자마자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은 꺼내지 않았다. 대신 서둘러 걸었다. 주위에 우산을 꺼내든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사람들은 비가 와도 우산을 잘 쓰지 않는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나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그들을 따라 한다. 하지만 비가 너무 많이 오는 경우에는, 거의 내가 가장 먼저 우산을 펴고, 이어 독일사람들도 하나 둘 우산을 편다. 그나마 오늘은 비가 그렇게 세차게 내리지 않았고, 그림을 그린 곳에서 멀지 않은 식당에서 점심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우산 없이도 비를 많이 맞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 스케치북도 젖지 않았다. 모두 무사했다. 나도. 그림도.

그 날 현장에서 그린 그림. 부끄럽지만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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