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ily Life 일상

캐스트너 씨 집 앞에서

날이 상쾌해 산책을 나섰다. 자주 걷는 길에 에리히 캐스트너가 2년간 살았던 집이 있다. 그가 이 집에 살았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고? 집 벽에 기념판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베를린 기념판

프라거 거리 17번지 (현재 12번지)에서
1927년부터 1929년까지
에리히 캐스트너 Erich Kästner(1899.2.23. - 1974.7.29)가
거주했다.
언론인이자 작가, 아동문학가였으며, 
<에밀과 탐정들>(1929)에서 프라거 광장의 주택가를 묘사했다. 
1933년 그의 책들은 나치에 의해 불태워졌다.

기념판 옆 벽면에는 제법 큰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의 책 <에밀과 탐정들 Emil und die Detektive>의 표지 그림이다.  중절모를 쓴 수상한 남자를 두 소년이 몰래 뒤쫓는 장면. 이 벽화를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지만, 원래 삽화가인 Walter Trier(발터 트리어)의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린 듯하다. 나는 이 길을 지날 때마다 이 집의 사진을 찍는다. 핸드폰 사진첩에는 이미 여러 장의 사진이 있지만, 매번 새로 찍게 된다. 그냥 그렇다. 

<에밀과 탐정들>은 내가 여러 번 읽은 책이다. 독일어를 막 배울 때도 읽었고, 아들이 초등학교에서 이 책을 함께 읽을 때도 덩달아 다시 읽었다. 아마 내가 국민학생이었을 때에도 읽었을 것이다. 어릴 적 나는 캐스트너의 책을 좋아했다. 아이들 책이지만 나름 쫀쫀한 서스펜스가 있다. 이 책은 본문도 재밌지만 서문에 해당하는 <이 이야기는 아직 전혀 시작되지 않았다>라는 챕터도 재미있다.  

작가는 원래 남태평양의 한 섬에 사는 소녀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단다. 제목은 <밀림 속의 파슬리>. 그러나 고래가 등장하는 장면을 쓰던 중, 작가는 자신이 고래 다리가 몇 개 인지 모른다는 사실에 이야기를 중단하고 말았다.(작가들이란 참 너스레도 잘 떠는 법이다.) 며칠 후 그는 식당의 웨이터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데, 웨이터는 작가에게 자신이 경험했거나 잘 아는 주제를 쓰라고 조언한다. 결국 케스트너는 자신이 살고 있는 베를린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기로 한다. 하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날 방바닥에 누워 의자다리와 탁자다리를 세어 보다가, 문득 탁자의 다리가 밤색 양말을 신은 학생 다리 같이 보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해서, 모범적인 학생 ‘에밀 티쉬바인‘이 탄생한다. 에밀의 성인 티쉬바인(Tischbein)은 말 그대로 “탁자 다리”라는 뜻이다.

또 하나 기억나는 책은 <쌍둥이 롯테 Das doppelte Lottchen>다. 나는 이 책도 참 재미있게 읽었다. 쌍둥이 자매 롯테와 루이제는 어릴 때 부모가 이혼을 하는 바람에 헤어지게 된다. 10살 무렵 여름캠프에서 만난 두 소녀는 자신들이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루이제는 롯테가 되고, 롯테는 루이제가 되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후, 결국 두 딸들 덕에 헤어진 부모가 다시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 그런데 나는 어릴 때부터 이 책 제목이 늘 의문스러웠다. 왜 <쌍둥이 롯테>일까? 주인공은 쌍둥이 자매인 롯테와 루이제인데, 왜 제목에는 롯테만 들어갔을까? 루이제는 왜 빠졌지? 어린 마음에도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사실은 지금도 여전히 궁금하다. 다시 읽으면 이 의문이 해소될까? 

그건 그렇고, 생각해 보니 나는 에리히 캐스트너를 아동문학가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책을 썼길래 나치가 그의 책들을 불태웠을까? 나치는 1933년 베벨 광장에서 ‘불온한 책들‘을 공개 소각했다.  캐스트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책이 불타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지금 그 장소, 바벨 광장에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문구가 동판에 새겨져 있다. 

“책을 불사르는 곳에서, 결국 인간도 불태워질 것이니”  

작가의 집을 지나며, 어린 시절 추억도 떠올리고, 전체주의자들의 분서에 분노도 하고, 캐스트너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뜻밖에 유익했던 베를린의 산책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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