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wing 그리기,  Travels 여행

2000년의 물길 : 세고비아 수도교

세고비아 수도교 The Aqueduct of Segovia / 종이에 펜드로잉

  당시 우리는 마드리드에 묵고 있었지만, 마드리드 도심 관광 대신 세고비아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이미 두 차례 스페인을 여행한 큰언니의 추천이었다.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아까지는 차로 1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큰 부담은 없는 거리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자마자, 우리는 거대한 로마시대 유적과 마주하게 되었다. 길이는 700미터가 넘고, 가장 높은 곳은 그 높이가 29미터가 넘으며, 167개의 이중 아치로 이루어진 수도교였다. 무려 2000년 전, 로마제국 시대에 건설된 구조물이다. 우리나라에선 삼국시대가 시작되기도 전인데, 로마인들은 이 먼 스페인까지 와서 이런 물길을 만들었다. 숲 속의 물이 도시까지 흘러오도록 말이다.

  당시 우리에겐 관광가이드도 없었고, 미리 공부를 한 것도 아니어서 수도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대수랴. 눈 앞에 이런 장관이 펼쳐져 있는데. “우와! 대단하다” 하면서, 목을 뒤로 꺾으며 거대한 높이의 유적을 사진에 담느라 바빴다. 너무 거대해서 어차피 사진 한 장에 다 담기도 어려웠다. 수도교 끝자락에 계단이 있었고, 사람들이 그리로 오르내리길래 우리도 따라 올라갔다. 

  계단을 끝까지 올라갔지만 수도교의 물길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높은 곳에 올라 사진을 찍으니 그 구도가 훨씬 안정적으로 보였다. 수도교 오른쪽에 보이는 아기자기한 마을이 진회색의 수도교와 대조되어 생기가 넘쳐 보였다. 코발트빛 푸른 하늘에는 검은 까마귀때가 아무런 규율없이 이 방향 저 방향으로 까악 까악 대며 날고 있었다. 솔찍히 유럽의 새들은 참으로 시끄럽다. 까마귀나 참새나 심지어 가끔은 비둘기마저도. 하지만 시야가 탁 트인 곳에 있으니, 그 소리가 그다지 거슬리지 않을 뿐더러 잘 어울린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예로부터 치산치수(治山治水)는 훌륭한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었다. 로마같은 거대한 권력이 치수에 진심이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유적을 볼 때마다 놀랍다. 나 어릴때는 상수도가 설치되지 않아서 펌프로 지하수를 퍼 올려 쓰는 집도 꽤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로마 제국의 규모가 궁금해지고 그 시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정치와 문화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공부하고 싶은 내용이 점점 많아진다. 

  이번 드로잉에서는 수도교의 전체 모습을 담지는 않았다.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기 때문에 이미 많은 분들이 그리셨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택가 바로 위로 수도교가 지나가는 끝자락의 풍경을 그려보았다. 그리기에 더 수월해 보여서 이 장면을 그린 이유도 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