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띠에 태어난 나의 운명에 감사를…
지난 주에 음력 설도 지냈으니 이젠 양력으로도 음력으로도 빼박 2018년이 되었다.
올해는 육십갑자로 무술년 개띠해이다. 황금개띠해라고 한다.
일단 금이 들어간걸로 보아 뭐가 좋아도 더 좋은 해려니 하고 있다.
이렇게 장황하게 서설을 푸는 이유가 있다.
바로 내가 개띠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개띠해라고 딱히 좋은 일이 생길 일은 없다.
개띠해에 내가 개띠임을 생각하는 것은 그저 나를 한번 더 돌아보고픈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1970년생.
우리가 중학교를 입학하던 그해 전국적으로 중고등학교 교복두발자율화가 실시되었다.
입학식날 나는 엄마가 입학기념으로 특별히 사주신 골덴마이를 입고 학교를 갔다.
몹시 추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새옷입고 학교에 갔던 기억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해, 다시 교복이 부활했다.
아마도 교육관련자 분들이 학생지도의 어려움을 호소하였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이미 고등학교 2학년이었기 때문에 교복을 입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그 때 이미 빨간색을 사랑하여, 빨간바지, 빨간치마를 자주 입고, 빨간 신발을 자주 신었는데, 만약 회색, 밤색, 검은색 일색인 교복만 입어야만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무조건 교복을 입어야만 했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거기에 또 잘 맞추어 살았겠지만, 지금처럼 칼라풀한 패션을 사랑하는 중년 아줌마가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2016년 신문에 실렸던 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 중 1970년생이 가장 진보적이라고 한다.(경향비즈, 2016.12.12)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이 현상에 대해 여러가지 분석을 내 놓으셨겠지만, 내 추론은 이렇다.
(내 추론 따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마는…^^)
사람의 삶에 있어 의식주는 기본조건이다.
의복은 제2의 피부이자, 자기자신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한국의 세대 중에서 가장 예민한 청소년기 시절에 자율복장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학생으로서의 신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표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집단주의를 기르는데 유니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 정신을 갖게 하는 효과가 크다.
반면 자율복장은 ‘나는 나’ 정신을 기른다. 아마도 요즘 말하는 개인주의자들이 많이 생겨나게 하는데 자유로운 복장이 큰 몫을 했으리라.
내가 20대 일때 사람들은 우리를 X세대라고 불렀다. 함수의 변수 X 처럼 확정되지 않은 혹은 알 수 없는 개인들이 모인 세대라는 뜻이지 않았을까?
뭐라 불리건 상관없다.
나는 내가 개인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는게 좋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는 게 좋다.
1970년에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과 1983년 당시 교복두발자율화를 결정해주신 교육당국에 감사드린다.
개띠인 나의 운명에도 감사한다.
추가. 교복이 더 편하다고 생각했을 분들도 있었을거라고 인정.
나의 개인적 소회, 그리고 70년생의 진보성에 대한 보고를 근거로 추론할 것일뿐임.
결론. 멍! 멍! 멍! 개소리로 여겨도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