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경어의 복잡함
초판 출간 2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켄슈타인을 다시 읽었다.
몇 년전에 1831년 판을 번역한 열린책들 버전을 읽었으므로, 이번에는 1818년 초판본을 옮겼다는 문예출판사 버전을 읽었다.
그런데, 이게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열린책들은 월턴이 손위 누나인 사빌부인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하는데, 문예출판사는 그 사빌부인이 누나가 아니라 여동생이기 때문이었다.
누님에게는 엄청나게 공손한 존대말로 상황보고를 하는데, 누이 동생에게는 친절한 평상어를 쓰고 있었다.
영어의 sister 만으로는 누나인지 여동생인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역자가 임의로 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월턴이 프랑켄슈타인을 깨진 빙하에서 구조한 후, 둘이 대화를 할 때 보면 열린책들은
월턴은 경어를, 프랑켄슈타인은 하오체를 쓰고, 문예출판사는 하게체를 쓰고 있다. 하게체를 쓰기에는 월턴과 프랑켄슈타인의 나이차가 얼마 안나는 것 같아서 좀 뜨아~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번역에 따라 경어의 수준을 다르게 적용하였는데, 그 뉘앙스가 너무 다르다.
같은 이야기 다른 느낌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나이, 계층, 성별에 따라 써야하는 경어가 다 다르기 때문에 초면부터 호구조사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이름을 막 부르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 호칭을 붙이려면 나이랑 하는 일 등등을 아는 것이 필수렸다.
언니인지 동생인지 아무개씨라고 부를지, 아무개님이라고 부를지….선생님이라고 부를지… 어떻게라도 상대를 부르려면 뭐라도 붙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기요~ ‘라는 이상한 말로 부르는 수 밖에.
거의 눈치 게임 수준이다.
일상에서도 이럴진데, 외국문학을 번역할 때 등장인물의 나이, 계층 등의 정보가 부족할 경우, 번역가가 경어를 쓸지 평어를 쓸지 꽤 고민을 해야만 할 거란 생각이 든다.
암튼 책의 내용이 중허지, 존대말인지 반말인지가 중헌건 아니니까.
느낌적 느낌들은 접어두고 내용에 집중하여 일단 책을 다 읽었다.
원래는 독서 감상문을 쓰려고 했으나, 현재 몸이 많이 피곤하여 생각을 깊게 하기도 어렵고, 처음 책을 열었을 때 존대말 반말의 뉘앙스 차이가 너무 크게 느껴져 일단 워밍업으로 경어의 복잡함에 대해 썼다.
프랑켄슈타인 독서감상문은 머리 맑을 때 재시도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