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단상
(* 며칠 전에 뜨개질 단상을 올렸으므로 오늘은 바느질 단상을 올려볼까 합니다.
* 사진은 작년에 완성에 인형 받침들. 95% 손바느질)
바느질이란 모름지기 손을 움직여야 되는 일인데, 최근에는 바늘 잡은 일도 없으면서, 바느질에 대해 쓰려고 하니, 뭔가 모순적인 상황인 듯 하여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쓰겠다.
말과 글 또한 무언가를 하는 것이라고 믿기에.^^
지난 번 글에서 뜨개질을 할 때마다 안데르센의 “백조왕자”가 떠오른다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바느질을 할 때마다 허난설헌의 시가 떠오른다는 것을 알려야겠다.
우선 허난설헌의 시 빈녀음(貧女吟) 중 일부를 인용한다.
手把金剪刀(수파금전도) 가위로 싹둑싹둑 옷을 마르노라
夜寒十指直(야한십지직) 추운 밤에 손끝을 호호 불리네
爲人作嫁衣(위인작가의) 시집살이 길옷은 밤낮이건만
年年還獨宿(연년환독숙) 이내 몸은 해마다 새우잠인가
돈을 버느라 시집도 못가고, 다른 사람이 결혼식에 입을 길옷을 짓는 여인이 한탄을 하고 있다.
가난한 여성의 삶에 슬픔과 외로움과 고단함이라는 정서가 가득하다.
지금이야 남자여자 가릴 것 없지만, 예전에 바느질은 오로지 여성의 일이었다.
안방마님이나 아씨마님, 애기씨도 방에 들어 앉아 수를 놓고, 가난한 여성들은 삯바느질을 하고, 행랑채 어멈은 옷을 기우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는 어디에도 밝고 기운찬 정서가 없다.
삯바느질 하는 여성의 삶이야 말할 것도 없겠고, 고귀한 규방의 마님들 역시 사회에서 고립된 채 고단한 삶을 사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예전에 규방공예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이상하리만치 장식적이고 손품이 많이 갔다. 그 때 생각했다. 방안에 갇힌 여성들이 그 설움을 이 복잡한 바느질로 푼 게 아닐까. 실용성 보다는 마음 잡을 방법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손바느질을 할 때면 이 슬픔의 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난 슬플 일도 없고, 즐겁자고 하는 일인데.
그런데도 그 느낌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요즘은 가급적 재봉틀 사용을 줄이고 손바느질을 더 많이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자유롭게 바느질을 할 수 있는 현재의 삶에 크게 감사할 때가 있다.
옛날에 태어나 자유롭게 외출도 못하고 방에서 바느질을 해야 했다면, 혹 규방의 마님이었다면 답답하고 억울해서, 혹 가난한 평민이거나 행랑채 노비였다면 힘들어서, 서른 전에 죽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아무래도 손 놓고 있던 바느질을 재개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바느질 거리를 찾아봐야겠다.
댓글 4개
김태은
와 손재주가 좋으신 것 같습니다. 예뻐요!
deinekim
태은님. 방문 감사합니다^^
김지선
예뻐요. 저도 퀼트와 바느질 좋아했던(손 놓은지 20년은 될 듯) 사람입니다.
몇년 전까지 가방을 만들었어요. 언제 저도 공유할께요.
deinekim
지선님.
바느질 좋아하시는 분을 여기서 만나니, 너무 너무 좋습니다.
저도 가방, 컵받침, 실내화 등등 손 닿는대로 만들곤 했는데…
사진찍어 올리는 게 귀찮아서 업데이트도 안하고 있습니디.
최근에는 손을 놓기도 했구요.
저도 다시 시작합니다.
지선님도 만드신 작품들 좀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