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에게 길을 묻다”를 읽고
“데카르트의 수학적 분석에 영감을 준 무지개의 특징이 뭐였다고 생각하나?”
“물방울 단 하나를 생각함으로써 무지개가 분석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라고 봅니다.”
“자네는 이 현상의 핵심적인 특징을 놓치고 있군. 그의 영감의 원천은 무지개가 아름답다는 생각일세.”
이 아름다운 대화는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라는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스티븐 호킹과 “위대한 설계”를 공저하기도 한 물리학자 레너드 믈로디노프이다. 그가 1981년 박사학위를 받고 칼텍의 연구원으로 있을 때, 그 당시 칼텍에 재직하고 있던 노벨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과 머레이 겔만을 만나 영향을 받으며 자기의 독자적인 인생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중간 중간 양자역학에 관한 설명이나 끈이론이 초창기에 물리학계에서 대접받지 못했던 상황들도 나와 흥미를 더한다.
저자는 양자역학의 양대산맥 이었던 파인만과 겔만의 성향이 매우 달랐다고 말한다. 파인만은 자연에 대해 이해하려 하고 그 현상에 초점을 맞추는 바빌로니아인 유형의 사람이었다면, 겔만은 자연을 범주로 묶고, 자연에 깔린 질서를 알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는 그리스인 유형이었다.
칼텍에서 보낸 일 년 동안 그는 조심스럽게 파인만도 만나고 겔만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쉽게 만남을 갖지는 못하였다. 파인만은 그 당시 이미 암수술을 두 차례나 받은 이후로 무척 쇠약해진 상태였고, 겔만도 아내가 암으로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만남을 가지려고 시도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연구해야할지, 어떤 인생을 살아야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여서 인생의 스승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캠퍼스에 두 명의 거인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그에게는 인생 절호의 찬스였기 때문이다.
학기가 끝나 파인만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러 간 그에게 파인만은 말한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해보게. 그것을 보면 가슴이 뛰나?”
그는 파인만의 길을 택하기로 한다. 파인만의 초점은 언제나 자기만족이었다. 리더의 삶을 원하지도 않았고 남들이 하는 연구에 덩달아 끌리지도 않았고, 남들이 이미 발견한 것을 다시 발견하게 되도 발견 그 자체로 만족했다.
결국 저자는 관심을 좀 가졌던 끈이론을 버리고 양자광학으로 연구 방향을 정하게 되고, 글쓰기에 대해서도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저자에게 몹시 감사했다. 물론 내가 막 사회에 발 내딛은 사람은 아니지만, 아직도 인생의 길을 찾아가는 중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갈림길에 서있을 때는 가슴이 뛰는 쪽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전에도 양자역학은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파인만의 책 “남이야 뭐라 하건!”,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를 아주 재밌게 읽었었다. 그만큼 파인만의 삶은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노년의 파인만을 그린 이 책은 더 감동적이었다. 내가 직접 겪지도 않은 사람을 우상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아름다움과 열정을 추구했던 그의 자세만큼은 꼭 마음에 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 반 살았다고 치고, 나머지 반은 파인만처럼 아름다움과 열정으로 채워 보자.
(원고지 9.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