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발된 이야기의 시작
며칠 전 이었다. 추위에 어깨를 움추리고 주택가 골목길을 종종종 걷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걸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멈추어 서서 주변을 자세히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특이한 게 있었다. 얼른 핸드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었다. 한 장. 두 장. 세장.
보통 가로수들은 지나다니는 차나 보행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 가지가 위로 높이 솟는 건 상관없지만, 옆으로 퍼지는 건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내가 알고 있는 가로수들은 나무 기둥을 기준으로 최대 45도 각도로 해서 가지들이 위로 가지런히 올라가는 게 대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그 날 내가 본 가로수 세 그루는 각각의 가지들이 트위스트를 추고 있었다. 꼬불 꼬불 왔다 갔다 하며 춤을 추었다. 도시의 가로수 느낌이 아니라 전설의 숲 속 나무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규칙적인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렇게 카오스적인 데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낀다. 나무들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옛 이야기들처럼 나무가 돌아다닐 수 있다면, 걸어 다니는 나무들은 아마도 이런 카오스적 형태를 하고 있을 것이다.
더 희한했던 건 주변의 나무들은 모두 가지런하여 아무 일 없는 듯이 평온한 데, 유독 연달아 서 있는 세 그루의 나무만 요동을 치고 있는 점이었다. 이 나무들 밑에서 필시 무언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내 생각은, 그리하여 주택가 골목길 지하로 깊숙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에 오래 잠겨 있을 수는 없었다. 얼른 집에 돌아가야 하니까. 밖이 춥기도 하고…
내가 작가였다면, 여기에서 재미난 이야기가 시작 되었을텐데, 하고 아쉬워하며 다시 길을 걸었다.
(원고지 4.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