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릴없이 봄을 기다리는.
어릴 때 몸에 각인된 계절 감각은 바뀌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나에게 3월은 계속 봄이다.
실상 베를린의 3월은 겨울이고, 여기 산지가 20년인데도 그렇다.
1998년 3월 베를린 테겔 공항을 통해 베를린이라는 도시에 처음 도착했다.
이 도시에 대한 첫 인상은, 공항 문을 열고 밖에 나갔을 때 느꼈던 엄청난 추위였다.
그 이후 베를린은 나에게 늘 추운 도시였다.
그럼 이제는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3월에 혹시 봄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물론 머리로는 포기했다.
하지만 마음이 그렇지가 않다.
거리의 쇼윈도에는 2월부터 이미 샤랄라 봄 옷들이 진열되어 있다.(왠지 늘 그렇다.)
길거리를 걸을 때마다 욕을 한다.
이렇게 추워죽겠는데 웬 봄 옷? 장난하나?
그래 놓고서는 20년째 같은 푸념이네. 하고 혼자 웃는다.
(8월경엔 가을 겨울 옷들 진열이 시작되는데, 그 땐 괴리감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곧 다시 추워질 거니까…^^)
어제는 함박눈이 내렸다.
정말 예쁘게. 소로록… 소로록…
내일도 눈이 온다고 한다.
잠깐 따뜻해진다는 예보도 있지만, 믿어도 될까?
날씨에 일희일비하는 내가 싫지만, 여기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만나면 날씨 얘기부터 하는 게 일상.
너무 춥지 않아? 너무 매일 비가 오는 거 아냐? 너무 해가 없는 거 아냐?
zu kalt, viel Regen, wenig Sonne…
3월의 봄을 포기하면 기분이 좀 더 나아질 수도 있을 텐데.
참 포기가 안 된다.
내 몸의 고집.
댓글 8개
올리
여기도 오늘 종일 눈발이 엄청 날렸어요.
춥고요. ㅎ ㅎ
deinekim
3월 말인데 한국에도 아직 봄이 안왔다니요… 이런 이런… ㅎㅎ
선한 영향력
백퍼 공감이요~~^^
2월28일과 3월1일은 하루 차이인데 왠지 계절이 확 바뀌는 것 같아요. 마음으로 느끼는 계절이요^^
여기 서울은 며칠 전 비가 내리며 기온이 내려가더니 오늘은 뜬금없이 눈이 오는 거 있죠? 비록 내리며 녹기는 하지만요~~
휴대폰 달력을 확인해 보니 아직 음력으로는 2월 5일밖에 안 됐네요~~
저 너머 오고 있는 봄에게 동장군이 마지막 심술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우리 식구들이 겨우내 입던 패딩을 세탁소에 맡겨 버렸죠!!! (차마 코트는 못 맡겼어요^^;;;;)
봄인지 겨울인지 아리송해도 3월은 봄이라고 저도 우길래요~~~ 하물며 양력 2월4일이 입춘이걸라요~~^^
deinekim
윤정님. 진짜 날짜 하루 바뀌는 거에 따라서 사람의 기대치가 달라진다는 게 참 이상하죠? 그런데, 서울에 3월에 눈이라니… 여기도 3월 마지막 주 일요일부터 써머타임이 시작돼요. 며칠 안남았네요. 그럼 날이 춥건 말건 그냥 봄이라고 생각합니다.^^ 날이 추워도 마음만은 봄인걸로…그냥 그게 좋겠어요. ㅎㅎ
김정희
올리님이 이미 눈소식을 알려주셨군요..ㅎㅎ 독일에서 20년을 사셨다니~~우와..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입니다..
옥토버페스티벌 반드시 가리라~~~!!!
deinekim
정희님. 저도 아직 옥토버페스트 못가봤어요.ㅠㅠ 뮌헨 너무 멀어요 ㅠㅠ
그래도 언젠가 갈 겁니다. 맥주에 대한 예의상 꼭 가야죠! ^^ 독일 꼭 놀러오세요. 살면 살수록 좋은 나라란 생각이 드네요.
하혜민
3월은 새학년이 시작되는 달이라 그런 걸까요? ㅎㅎ 저도 3월이면 개나리 생각나고 막 그런데, 요즘엔 눈도 내리네요 예전엔 2월 말이면 목련도 피었던 것 같은데 3월 말인데도 목련 소식이 없어요
점점 짧아지는 봄을 위해 마음만이라도 봄을 외쳐봅니다
deinekim
혜민님. 맞아요.제 기억에도 3월엔 꽃들로 온통 알록달록 했었던 것 같은데요…진짜 전 세계적으로 봄 가을이 짧아지나봐요. 혜민님 말씀처럼 마음만이라도 봄을 외쳐 보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