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를 읽고
오늘 소개 하고 싶은 책은 로쟈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하신 이현우 님의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입니다.
어제 밤 자기 전에 다 읽었는데, 다 읽고 내가 한 말이 “이 책 읽기 잘 했어.”였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니체의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핵심개념인 “초인”과 “영원회귀” 개념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 후에는 니체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작가들과 그 작품들을 초인과 영원회귀 개념으로 해석하고요.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예전에 읽긴 읽었습니다. 그냥 눈으로만 읽었죠.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쪼금, 아주 쪼금 알 것도 같습니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란 독일어로 Übermensch 입니다. 위버멘쉬란 ‘넘어가는 인간’이자 ‘극복하는 인간’입니다. 초인의 삶은 주인으로서의 삶입니다. 자신이 결정권을 가진 주체적인 인간을 말합니다.
그리고 “영원회귀”란 이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들은 유한하고 시간은 무한하기 때문에, 무한한 시간 속에서 유한한 물질의 조합은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은 결정론적인 세계입니다. 초인이 가진 절대적인 자유와 선택의 의지를 제약합니다. 여기에서 초인과 영원회귀 사상에 모순이 발생합니다.
초인과 영원회귀 이 두 가지가 <차라투스투라>의 중심 개념인데 모순이 생기면 안 되죠. 그래서 차라투스투라는 “내가 원한다”고 말함으로써 이 모순을 해결합니다. 자신이 원치 않는 세계가 반복된다면 자신은 예속된 것이지만, 자신이 반복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예속이 아닌 것이지요.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지나 간 과거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내가 원했어”라고 한다면, 그건 자기 운명에 대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모르파티 (amor fati), 운명에 대한 사랑인 것이지요.
아 이렇게 명확하게 니체 철학을 설명해 주시다니, 저자님께 너무 너무 감사드리고 싶네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작가와 작품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최후의 유혹>, 서머싯 모옴의 <달과 6펜스>, <인생의 베일>, <면도날>, 그리고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입니다.
이 중에서 저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해석이 가장 흥미로웠는데요, 쿤데라가 이 작품에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단 한번 뿐인 삶에 반복되는 삶인 영원회귀를 붙여 놓으면, 단 한번 뿐인 삶은 갑자기 새롭게 규정이 됩니다. 영원회귀가 너무 무겁기 때문에 일회적인 삶은 너무 가벼워집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언제 읽었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래전에 읽었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도 읽어보고 싶고요, 모옴 책은 한 권도 못 읽어 봤는데, 모옴 책들도 읽어 봐야겠구요.
읽어야 할 책 목록만 자꾸 자꾸 늘어납니다.
어째 저 개인적으로는 영원회귀 개념과는 반대로 시간이 무한한 게 아니라, 시간은 유한한데 물질적인 할 일이 무한한 느낌이죠? ㅎㅎ.
아니면 이런 상태가 무한히 반복 되는건가? 미궁이로군요.
아 역시… 이해한 줄 알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던 것이군요. 무한회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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